제목: 속 검은 일부 공직자들


글쓴이: 백규

등록일: 2002-08-08 05:23
조회수: 2557
 
속 검은 일부 공직자들


얼마 전 이곳에서 연세 지긋하신 교포 한 분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처음 만난 나를 붙잡고 한국의 공직자들 가운데 수십만명 정도를 즉시 몰아내거나 죽이지 않으면 앞으로 몇 세기가 흘러도 우리의 국가적 비극은 끝날 수 없다고 격하게 흥분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한국에서 공무원들에게 당한 억울함을 하소연하는데, 공감이 되면서도 이곳에 그 내용을 차마 옮길 수 없을 정도로 지저분하였다. 국가관, 공인의식, 시대의식 등 기본적 조건들을 제대로 갖춘 공직자들을 만나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분의 평가대로라면 그들 모두는 기회주의적 모리배들이요, 국민들의 혈세나 축내는 기생충들에 불과한 존재들이었다.

곰곰 생각해보자. 그들은 누구인가. 다른 혹성에서 수입해온 외계인들이 아닐진대, 그들 역시 우리 자신 혹은 우리의 형제 자매들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왜 그렇게 비판하고 비판당하는 입장이 하늘과 땅의 차이를 보이는가. 선량하고 정직하고 청렴하던 우리의 형제 자매들이 그곳에 발을 붙이기만 하면 왜 그렇게 생소한 외계인으로 변할까.

필자 나이 40초반. 공무원, 정치인 등 이 나라를 움직이는 공직자들의 부정부패 속에서 커 온 세대다. 그런 속에서도 용케 이 나라가 견뎌왔고, 내 몸을 더럽히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신기할 뿐이다. 공직자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소식은 그동안 신물이 나도록 들어왔고, 지금도 사회면의 맨 위 자리는 모두 이들의 차지다. 각종 규제의 칼자루를 거머쥐고 국민들의 위에 군림하며 온갖 단물을 빨아먹는 일에 이골이 나 있기 때문인가.

조선조 후기로 내려오면서 공직자들은 착취와 탐학의 주체요, 백성은 그들의 대상이요 먹이였다. 중앙의 벼슬아치는 말할 것도 없고, 지방의 수령이나 아전들은 그들대로 온통 보릿고개에 소나무 껍질 벗기듯 백성들을 벗겨먹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당시 대민 정책의 근간은 三政

즉 田政, 軍政, 還穀이었다. 그러나 엉망이었다. 으레껏 수령과 아전은 한 통속이 되어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만행들을 저지르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조세포탈이란 국가에 들어가야 할 조세를 중간에 떼어먹는 일이다. 요즈음은 납세 의무자인 국민들 가운데도 조세 포탈범들이 꽤 있지만, 당시에는 주로 아전들이 주역이었다. 떼어 먹는 방법은 많았다. 예를 들어 환곡이란 제도를 보자. 환곡이란 춘궁기에 지방 관아의 보유미를 백성들에게 빌려주고 추수기에 약간의 이자를 붙여 받는 제도로서 가난한 백성들을 구휼하려는 방편으로 시행되던 정책이었다. 그러나 눈치 빠른 아전들은 穀價가 비교적 헐한 이웃 지방으로부터 곡식을 사들여 백성들에게 방출하고 높은 이자를 붙여 받아 들임으로써 엄청난 차익을 챙기곤 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고을들에서 환곡을 나누어 줄 때 虛殼이나 空殼, 심지어는 돌을 섞어 분량을 늘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作奸한 곡식을 대낮에 나누어 줄 경우 백성들이 금방 눈치를 챌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아무리 양심 덩어리가 송두리째 사라진 수령 아전이라 해도 낯을 들기가 어려울 것이니 이들은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낸다. 즉 환곡을 나누어 주는 날은 온갖 광대패들을 불러다가 관아의 마당에서 놀이를 시킨다. 배고픈 백성들이야 환곡을 준다 하니 저마다 지게들을 지고 관아에 몰려들 것이 아닌가. 그러나 수령이나 아전들은 환곡을 나누어줄 생각은 아니하고 하루 종일 광대들로 하여금 풍악을 울리고 온갖 수작들을 다 부리게 하여 백성들 혼을 쏙 빼놓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어둑발이 들면 그제서야 왕겨나 돌을 듬뿍 섞인 곡식을 말질하여 나누어주는 것이었다. 아무리 안경을 썼다한들 어둠 속에서야 왕겨나 돌이 보일 리 있나. 그나마도 군노사령배들이 휘몰아치는 바람에 어떤 이들은 그 돌 반 곡식 반의 섬이나 가마니마저 잃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그 뿐인가. 이듬해 환곡을 돌려받을 때, 한 섬에 얼마씩 나누어 덤으로 징수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래서 결국엔 민란이 나고, 동학혁명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치부한 자손들이 대를 이어 부를 누리고, 결국 망국의 늪으로까지 이어진 원천이었다. 그런 썩어빠지 吏道가 한 번도 맑아지지 아니한 채 근대국가로 이어졌고, 정신 없이 휘몰아치는 개발의 열풍 속에서 왕조시대보다 더욱 교묘하고 악랄한 방법으로 백성들의 재물을 수탈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상 淸貧으로 명예를 얻은 벼슬아치 또한 많거늘, 어찌하여 오늘날의 공직자들은 하나같이 그들을 외면하려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공직사회의 면면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우리나라가 이나마라도 유지되는 것이 기적이라고 서울의 모처에서 조그마한 사업을 하는 한 친구는 한탄한다. 구청, 동사무소, 소방서, 세무서, 파출소 등에 정기적으로 상납하는 돈이 얼만줄 아느냐고 내게 울상을 짓는 친구를 보며 오늘도 나는 답답해진 가슴이나 두드릴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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