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대학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글쓴이: 백규

등록일: 2002-08-08 07:05
조회수: 2852
 
숭실대신문 789호 사설

대학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어제도 오늘도 이 나라의 지도층 인사들은 부정과 비리를 저질러 굴비처럼 엮인 채 잡혀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에서 죄의식이나 부끄러움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발각된 놈만 억울할 뿐, 모두가 공범이고 우범자들인데 부끄러울 게 무어냐는 심뽀들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부패지수가 조사대상 50개국 가운데 40 몇위라는 결과를 얼마전 국제 기구에서 발표한 적이 있는데, 이 나라가 금방 망해버리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온통 가짜와 도둑들이 선량한 국민들을 깔고 앉아 제 배를 채우는 형국임에도 우리는 그 심각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마비된 양심의 토양에 뿌리내린 부패심리 때문이다.

자, 이제 중간고사가 끝난 강의실에 한 번 가보기로 하자. 책상바닥을 가득 메운 깨알같은 글자들이 대학인들의 벌레 먹은 지성과 양심을 웅변으로 입증해주는 현장을, 우리는 바로 그곳에서 만날 수 있다. 학교당국이 아무리 돈을 들여 도색을 하고 닦아내도 시험 한 번만 치고나면 도로아미타불이다. 빤한 책상 하나가 없을 지경이다. 성실하게 공부를 하고 정직하게 시험을 보는 다수 학생들의 억울함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모든 것이 성적으로 판가름나는 구조에서 정직한 학생들이 당하는 정신적∙물질적 피해란 말할 수 없이 크다. 장학생의 대열에서도, 졸업 후의 취직전선에서도 부정직한 친구들에게 밀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손해를 본다면, 어떻게 우리가 사회정의를 외칠 수 있단 말인가? 사회에 대하여 그토록 처절하게 정의와 진리를 부르짖는 그들이 어째서 자신들의 불의와 비리에는 그토록 너그러울 수 있을까? 대학생들의 부정행위와 일반사회의 부패는 밀접한 함수관계를 갖는다. 이들이 졸업후 몸 담게 되는 사회는 좀더 처절한 생존경쟁의 원리가 판 치는 곳이다. 이런 곳에 나간 그들이 대학에서 익힌 생존의 방법을 포기하고 양심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보는가? 지금 잡혀 들어가는 저 지도층의, 아니 운이 좋아 잡히지 않은 채 그늘 속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범죄자들의 그 냄새나는 정신상태는 과연 언제 형성되었단 말인가?

일말의 자존심이나마 가진 대학인이라면 양심에 부끄러운 짓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굶어 죽을지언정 돼지 밥통에 흘린 밥알을 탐하지 않겠노라는, 오연한 자존심만이 대학인을 대학인답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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