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한국 대학들의 학문적 사망선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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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09-09-20 12:52
조회수: 2996
 
한국 대학들의 학문적 사망선고(1)


근래 들은 일이다. 서울의 모 대학에서 교수 공채를 했다. 그 대학은 이른바 자칭 상위권이고, 세칭 중위권이었다. 빛나는 박사학위를 소지한 제제다사들이 몰려 들었다. 복잡다단한(?) 인선과정을 거쳐 3명의 후보가 최종 선발되었다. 세칭 일류대학 출신 2명에 그 대학 출신 1명이 그들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도 그 대학 출신의 후보자는 다른 후보자들에 비해 처졌던 모양이다. 그래서 다른 대학 출신 후보자들은 "잘만 하면 될지도 모르겠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게 되었단다. 마지막 단계로 총장의 면접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 근엄하신 표정의 총장 왈 "당신들은 일류대학 출신에 연구업적도 많으니 어느 대학엔들 못 가겠소? 그러나 이 대학 출신자는 이 대학을 제외하면 갈 곳이 없소. 그러니, 어떤 결과가 나와도 승복해주길 바라겠소."

'필부필부/장삼이사/시정잡배/모리배' 등 그 성향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 자연인과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고 보는, 그야말로 21세기 한국을 리드해야할 이성과 지성의 심볼 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총장의 입에서 드디어 '차마 듣지 못할', 아니 '들어서는 안될' 반지성적이고 반문명적이며 무책임한 선언을 이들은 듣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차라리 이 대학의 총장이 비록 야비하긴 하지만 솔직하다는 면에서 말 다르고 행동 다른 일부 다른 대학 총장들보다는 좀 낫다고 할 수 있을까? 말하자면, 현재 한국사회의 대학총장들 아니 총장 인력의 풀(pool)이라고 할 수 있는 교수사회의 마음과 입장이 똑 같은 것 아닐까? 교수야 학문적으로 좀 모자라면 어떠리? 우선 모자라도 내 제자, 내 동문을 쓰고 보아야 두고두고 마음 편할 것 아닌가? 학문적 수월성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 공부 열심히 하고 논문 깨나 쓴다는 놈과 그렇지 못한 놈과 무슨 큰 차이가 있더란 말이냐? 학문적으로 좀 크고 나면 괜히 목에 힘이나 줄 뿐, 학교 운영에 총장 선거에 학생들 다독거림에 친목 술모임에 무슨 쓸모가 있더냐? 차라리 논문 몇 편 많은 것보다 내 말에 고분고분하고 어려운 일에 발 벗고 나서는 '인간성(?)'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아마 이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학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는 동문회로부터 혹은 국가 행정 라인으로부터 모종의 압력이 있었거나. 그 자세한 내막을 알 수는 없지만, 이 대학 총장의 선언은 그야말로 "대학의 사망선고"인 셈이다.

대학은 무엇으로 사는가? 대학을 대학 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대학과 친목단체의 차이는 무엇인가? 지난 세기 내내 별처럼 많은 석학들이 지겹게도 '대학이 나아갈 길'에 대하여 역설했건만, 새 천년의 벽두에 만나는 이 나라 대학들의 자화상은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큰 이변이 없는 한 당분간 한국의 대학들, 특히 수도권의 대학들이 '재정적으로' 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학 총장의 선언으로 우리가 분명히 예견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의 대학들이 '학문적으로' 이미 상당부분 망해버렸으며 조만간 사망선고까지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BK21 등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은들 그 돈을 집행할 세포조직 즉 학문집단이 썩어 있는 한, 이들에게 그것은 '요긴한 비료'가 아니라 '씻어낼 수 없는 독'이 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작은 나라다. 그동안 누구의 잘못이건 나라의 크기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대학들을 만들었고, 지금도 대학들에서는 쉬지 않고 박사님들을 배출해고 있다. 서로간에 아무런 비교도 하지 않은채, 아니 비교해볼 공동의 장을 마련하지도 않은채 교수들은 자신의 제자들을 박사로 키워냈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자신의 작품이 불량품인지는 아예 처음부터 '吾不關焉'이다. 배출한 박사들의 질보다는 몇 명이나 배출했느냐가 성공적인 학구생활의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통용되는 시장구조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면 모두가 공범인 이상 누구를 탓할 수는 없겠으나, 어쨌든 무서운 일이다. 하다못해 작은 못을 만드는 공장이라 할지라도 이 못이 건축 현장에 사용되어 과연 그 건축물을 지탱할 수 있을까에 대하여 한 번쯤 걱정이라도 하련만, 대부분의 박사 지도교수들은 아예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박사들이 넘쳐난다. 타이틀에 합당한 일거리를 찾지 못한 박사들로 만원이다. 그러니 이 대학 총장만 나무랄 일은 아니다. 삼사십이 넘은 박사 제자들이 목을 늘이고 있는 현실에서 아무리 학문적으로 뛰어나다 한들 어떻게 남의 대학 출신자에게 그 금싸라기같은 교수직을 넘길 수 있겠는가? 대학의 이상? 좋아하시네.

일부 메이저급 대학들에게 좋은 시절이 있었다. 그들 대학원만 나오면 웬만한 대학에 자리잡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고, 심지어는 '立稻先賣'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오만해진 것일까? 교수자리만 나오면 당연히 자신들의 차지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독식'하려는 속마음을 종종 드러내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학문적 수준의 고려는 거의 생각해볼 수 없는 일이었다. 메이저급 대학들 이외의 대학들이 자기 출신들로 교수직을 채우려고 나서게 된 것도 당연한 반작용이 아닌가? 이처럼 서로 '제 닭 잡아먹기'에 혈안이 된 한국의 대학들에서 무슨 학문이며 대학의 이상을 운위할 수 있단 말인가? 앞에서 거론한 그 총장은 말하자면 이와 같이 '막가파식'으로 변해버린 한국 대학사회의 현실을 솔직하게 대변한 것이다.

과연 한국 교수시장의 경직성은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이 문제로 고민해보지 않은 대학교수들이 과연 있을까? 그만큼 절실한 문제이면서도 오히려 그들 스스로 반대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부정적 '관성'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는 편리한 용어가 있긴 하다. 그러나 한국 대학인들의 운명적인 '眼高手卑'的 생태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 있는 진단이다.

아무리 교수 지망자가 많고 교수직이 적다 해도 인선 자체가 공정해야 억울한 사람이 줄어들 것이다. 그것이 첫째 요건이다. 그렇다면 그 공정성은 어떻게 담보될 수 있는가? 우선 메이저급 대학들부터 자기 대학 출신자들만 채용하는 관행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철저히 학문적 수월성이나 교수로서의 자질 등만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물론, "학문적 수월성이나 교수로서의 자질로 보아도 그 누가 우리 대학의 인재들을 따라갈 수 있으리?"라고 그 불가피함을 자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다못해 열에 두셋은 그런 경우가 있지 않겠는가? 어찌 백이면 백 모두가 그렇게 뛰어나단 말인가? 그들이 단안을 내려야 새로운 기풍은 대학가 전체로 서서히 번질 수 있다. 그러나 만에 하나 메이저급 이외의 대학들 일부에서 그런 관행을 타파하고자 해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적체 인원을 해소할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는 메이저급 대학들이 있다면 '도로아미타불'이다. 그럴 경우 메이저급 대학들은 자기들 자리도 먹고 남의 대학 자리도 먹는,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경우가 되지 않겠는가? 그러니 '제 닭 잡아먹는' 愚行의 사슬을 메이저급 대학들에서 끊어주는 것이 절실하다.

그 다음에는 박사급 인력의 활용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국가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식의 각종 사업들을 과감히 정리하여 그 돈으로 분야별 국책 연구소들을 만들거나 활성화 해야 한다. 그리고 각 대학들은 공동으로 모금운동을 펼쳐서라도 필요한 재원을 보탤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 철저한 심사를 통하여 박사급 연구원들을 '한시적으로라도' 가급적 많이 채용해야 한다. 어려울 경우 그들에게 반드시 연구실은 주지 않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연구비를 지원해주고 논문이나 저서의무를 부과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학자로서의 정체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기존 교수사회를 철저히 평가하여 이들 그룹이 공정하면서도 수월하게 교수사회로 진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박사인력의 배출은 철저히 통제되어야 한다. 양보다 질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박사급 지도교수의 자질은 철저히 검증되어야 한다. 박사를 배출하는 지도교수만이 긍지를 느끼게 되어있는 우리나라 교수사회의 분위기는 바뀌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스스로 박사를 배출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내린다면, 그 결단은 인격이나 윤리적 차원에서 마땅히 존중되는 분위기도 중요하다. 교수 경력 몇 년에 박사 하나 배출 못한 것이 흡사 학문적 도정에 큰 흠이라도 되는 듯이 여겨진다면, 누군들 기를 쓰고라도 무자격의 박사들을 양산하려고 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양심과 양식이다. 그 양심과 양식은 한국의 대학들이 지금과 같은 관행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깨닫고 '대오각성'하는 순간 생겨날 수 있다. 한국의 대학들이 조만간 '재정적으로는' 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망하게 되리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 모두 함께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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