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共存 파괴하는 언어폭력


글쓴이: 백규 * http://www.kicho.pe.kr

등록일: 2002-09-09 02:10
조회수: 3091
 
■ 조선일보 특별기획 <위기의 지식인 사회 Ⅱ>

共存 파괴하는 언어폭력


요즈음 벌어지고 있는 지식인들의 논쟁은 지극히 저급하다. 언제나 상대방의 항복만을 강요하고 단발성 독설들만 날린다. 심지어 생각과 입장이 다른 동업자들에게 ‘수구반동’ 정도를 넘어 ‘개’나 ‘창녀’ 같은 원색적인 욕설을 퍼부어대는 칼럼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 못하는 지식인들이 이런 곳에서 너절한 배설의 쾌감을 맛보고자 하는 듯한 현실이 놀랍다.

글 전체를 ‘匕首’로


그 뿐인가. 단어나 문장 차원에 그치지 않고 글 전체를 비수로 만들어 상대방의 혈을 찍으려 든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지적 천박성이나 지식인에 대한 불신 또한 그런 저급성에서 연유됨은 물론이다.

삶의 새로운 공간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이웃을 향해 마음을 열라’는 주문이 시대정신으로 정착되었다. 바야흐로 ‘울타리 없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시대에 또 다른 차원의 책무가 지식인에게 요구되었다. 상대방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아는 ‘톨레랑스(tol rance)’의 미덕이 바로 그것이다. 공존은 관용과 열린 가슴을 전제로 하는 삶의 방식이다. 그럼에도 이 시대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말에 좀더 험한 날을 세우기에 바쁘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항복’을 받아내려는 일이야말로 공존을 거부하는, 시대 역행적이며 반지성적인 폭력일 뿐인데도 말이다.

불행히 이 땅의 지식인들은 준비도 못한 채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어느 편에 서 있었든 그들은 흑백논리가 판을 치던 지난 시대의 그늘에서 한동안 속 편히 지낼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 새로운 시대의 조타수가 되어야 함에도 변변하게 ‘준비해 놓은’ 그 무엇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마음에 자물쇠를 채우거나 겹겹이 울타리를 두른 채 상대방의 생각을 용납하려 하지 않는다. 결국 ‘준비 안된’ 자들의 자신 없음만 만천하에 드러낼 뿐이다.

칼럼에서도 毒舌…욕설…
상대방의 항복만 강요
‘大衆주의’ 함정 벗어나야


관용과 공존은 자신감을 기반으로 하는 삶의 원리다. 그런 점에서 견해가 다른 상대방을 극도로 존중하며 장장 8년간 사단칠정(四端七情) 논변을 나눈 조선시대 이황(李滉)과 기대승(奇大升)의 지식인적 면모는 세계에 자랑할만하다. 두 사람의 논변을 통해 간파해야 하는 것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하는 인내와 관용의 덕목이다. 몇 년간 지속되어도 변함없이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자기 생각을 다듬어나가는 것은 끊임없는 인격의 연마와 공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진실을 그들은 보여준다.

허물이나 꼬집어내고 그것으로 상대방을 ‘저열한’ 범주에 애써 묶어두려는 것 자체가 언어 폭력이고, 그런 폭력은 의식없는 지식인들의 편리한 도피처이기도 하다. 올바른 의식을 갖추지 못한 지식인에게 새로운 지식의 생산을 기대할 수는 없다.

‘관용의 정신’ 회복부터


지속적이고 건전한 논쟁을 통해 바람직한 지식의 확대 재생산을 시도할만한 바탕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경우 사용하고픈 유혹을 느끼는 수단. 그것이 바로 언어의 폭력이다. 무엇보다도 폭력적인 언어는 지식인의 생명인 논리를 추방한다. 그러한 언어 아닌 언어야말로 관용과 공존 및 개방의 시대정신을 몰각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나와 견해가 다른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흠집을 냄으로써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보는 생각이 착각임은 선동정치가 만연하는 정치권의 폐해를 통해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미래를 내다보는 지식인이라면 자칫 교묘한 마키아벨리즘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대중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개방성과 균형감을 갖춘 지식인의 본모습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관용의 정신을 회복하는 일이 시급하다.

- 조선일보 2001년 7월 19일 목요일 41판 제25055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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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식   2002-09-09 03:24:46 [삭제]
규익이 보게나 // // 종잡을 수 없이 오락가락 하는 무더위와 폭우에 잘 지내고 있는지? // // 갑자기 메일을 보게 되어 의아스러울 걸세. // // 먼저 말하지. 얼마 전 조선일보에 쓴 자네 칼럼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네. 반가움과 의아스러움이 얽힌 상태에서 글을 읽어 나갔지. 그리고 고민에 빠졌다네. 전화를 해서 술을 마시자고 할까. 힘은 없지만 한방 쥐어박는 게 속 시원할까. 모르는 체 넘어갈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군. 강연 원고 마감은 목에 찼는데, 속을 끓이며 여러 날 보냈지. 결론은 모른 체 넘어갈 수는 없다. 내 인생에 비춰서도, 우리 사이의 오랜 정리를 위해서도, 또 자네나 나나 정치 사회적인 삶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점에서라도 자네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하고 싶은 말, 해 줄 말은 해야겠다고 결론 내렸네. 우리 둘 다 시간도 여유롭지 않겠지만 얼굴을 대하면 하고 싶은 말이 빗나갈 것 같아 가능하면 차분하게 메일로 이야기하기로 했네. 이야기 중에 가끔은 자네가 비판한 `저급하거나 단발성 독설`이 나오더라도 미처 닦여지지 않은 내 인격의 수준이나 또는 성급한 기질 아니면 험하게 살아온 역정 때문일 거라고 여기고 눅여 생각해 주기 바라네. // // 먼저 자네 글은 내용만으로 볼 때에는 몇 군데 선정적인 표현이 눈에 거슬리지만 훌륭한 글이었네. 문제는 시기적 상황과 매체의 선택에 있지. 무슨 일이든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운 경우는 없다고 생각하네. 같은 사물도 가시광선의 파장 속에서 띠는 색깔과 적외선이나 자외선 같은 파장에서 띠는 색깔은 다를 걸세. // // 언론사 세무 사찰을 계기로 벌어진 공방이라는 상황과 조선일보라는 매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 내 생각을 말한다면, 나는 역사나 사회에서 가치 중립을 믿지 않네. 가치 중립이나 양시 양비론은 아웃사이더의 점잖은-또는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깨닫지 못하는-처신은 될망정 엄격하게는 위장이고, 힘 센 쪽에 대한 편들기에 불과하지 않을까? 우리 역사에서 조선일보가 어떤 신문인가? 그리고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자네가 비판하는 사람들의 표현대로 `수구 반동`이 또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일들을 해 왔는가? 단적으로 말해서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과 조선일보가 친일에서 친미로 탈바꿈하고 힘 있는 세력에 아부하면서 스스로 힘을 만들고, 그러면서 역사를 어떻게 왜곡했으며 민중의 소망과 삶을 어떻게 짓밟았는가? // // 나는 요 몇 년 동안 분단을 고민하고 통일을 위한 작은 몸부림을 하면서 우리의 근현대사를 다시 읽고 있다네. 이 땅에서 힘과 돈과 재주 있는 사람들이 일제 시대에 어떤 행적을 벌였는지. 해방 후 민중의 소망은 무엇이었고 어떤 세력들이 통일된 국민국가 건설을 막고 분단을 획책했는지. 그 뒤 기득권 세력이 왜 지배 전략으로 냉전 이데올로기를 온 사회에 내면화시키고, 그도 모자라 개발독재와 지역감정을 보조 기제로 활용했는지. 민주와 통일과 생존권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과연 누가 편가르기와 흑백 논리를 조장했을까? 멍청하게도 제가 당하는 줄 모르고 힘 없는 사람들이 그랬을까? 기득권 세력에 반대하는 진보적인 사람들 중(아니 진보가 아니라도 반대 그 자체로) 과연 `빨갱이`라는 언어 폭력 또는 언어를 통한 상징 조작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있었는가? 이런 풍토에서 자네가 그토록 기리고 있는 이황과 기대승의 아름다운 토론 문화가 가능했겠는가. 생각해 보게. 세계 유일의 법인 국가보안법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실제 어떤 구실을 해 왔는지. 그리고 사상의 자유조차 없는 토양에서 어떻게 토론 문화가 자라고, 칼 쥔 쪽 일방의 논리만 허용된 합법을 가장한 폭력 앞에서 어떻게 관용과 공존의 태도가 형성될 수 있었겠는지. 우리는 기득권에 저항한다는 것은 곧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역사를 살아오지 않았던가. 많이들 얘기하는 프랑스 사회의 토론과 관용의 문화가 그냥 생겼을까? // // 1944년 8월 4년여의 나치 지배에서 벗어났을 때 그들은 어떻게 했던가. 1951년 프랑스 의회 보고서의 따르면 프랑스는 44년 8월 해방 이후 나치 협력자 1만명 이상을 즉결 처형하고, 그 뒤 재판을 통해 6,763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고 하네. 또 12만 명이 넘는 공직자에게 시민권 박탈 등 행정 처분을 했으며, 대다수 언론을 폐간시켰다고 하지. 다른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로 인구 10만명 당 징역형 이상의 처벌자 수를 보면 프랑스가 94명인데 반해 벨기에는 596명, 노르웨이는 633명으로 10배가 넘는다고 하네. 이런 정의 세우기, 우리 식으로 하면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아픈 통과 의례를 거쳐서야 토론과 관용의 문화가 세워지지 않았을까. 그런데 우리는 일제 35년을 거치고도 친일 부역자 처벌은커녕 그들이 다시 기득권 세력으로 다시 똬리 틀지 않았던가. // // 80년 제대 뒤에 복학을 포기하고 시청 앞에서 출판일을 하다가 80년 봄을 맞았네. 그리고는 처음으로 역사란 무엇인지 공부하고 싶어 성균관에서 한문 강독을 받았네. 그 때 선생님께서 중용을 말씀하시면서 중용은 그냥 가운데가 아니라 `時中`이라고 풀어 주셨다네. 중용의 실천을 `용기의 편들기`, `정의 편들기` 또는 `진실의 편들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 이미 석가든 예수든 공자든 주류 사회에 대해 그런 편들기를 한 것이 아닐까. 빅토르 위고의 편들기, 에밀 졸라의 편들기, 우리 역사에서도 원효의 편들기, 허균이나 정약용의 편들기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 사회에서 힘 없고 차별 받는 사람들, 정의롭게 살려다 고통받는 사람들,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대한 편들기가 시중의 실천이 아닐까? 기득권 세력에 저항하는 세력들이 때론 거칠다는 점을 인정하네. 거대한 힘에 저항하다 보면 같은 논리로 거칠어지기도 하지. 때로는 목숨을 내놓기도 해야 하고 때로는 악에 바치다 보니 그리 되겠지. 그러나 어떤 폭력이 더 큰 폭력이던가. 국가를 내세워 고문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고, 감옥에 가두고, 직장에서 쫓아내고, 백색 테러를 하는 행위인가 아니면 악에 바쳐 욕하고, 기물 몇 개 부수고, 더 억울하면 자해하는 행위인가. // // 과연 이 땅의 지식인의 중용 실천은 어떠해야 하는가. 누구를, 어떤 논리를 편들기 해야 하는가. 분단이나 흡수 통일인가 공존의 평화 통일인가. 언론 탄압을 내세운 사권력화된 족벌 언론의 비호인가 사회의 공기로 바로 세울 언론 개혁 방안인가. IMF 관리 체제에서도 오히려 재산을 불린 20%의 상층인가 갈수록 생존의 벼랑에 내몰리는 노동자와 민중인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논리를 내세운 사학 자본과 그에 유착한 정치권인가 교육의 공공성과 상식을 내세우며 사학법 개정을 요구하는 교사와 시민들인가. 탄압과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유신 때는 어떻게 행동했으며,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는 무슨 말을 했는가. 그 때는 지금보다 위기가 없었고 탄압이 덜 했던가. 앞에 내 식으로 해석한 시중의 의미에 `양심의 편들기` 하나를 더하고 싶네. // // 나 역시 우리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 간에 멋진 토론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 보수는 개념상이나 학문 분야에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현실적-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집단으로서의 보수는 없다는 것이 내 경험적 판단이라네. 극우였거나 또는 이데올로기도 아닌 솔직히 기득의 욕망으로 뭉쳐진 집단만 있었을 뿐이지.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아쉽게도 진보 세력 또한 이성적 합리성을 갖춘 집단이 미처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다고 보네. // // 해직 시절 전교조 신문 편집실장을 할 때 일이라네. 서툴고 불철저한 기자들을 책망하면서 `조선일보를 배워라. 그들의 발로 뛰는 집요함, 사람 관리하는 철저함, 그리고 극히 주관적인 편파성을 지극히 객관화된 글로 포장하는 실력을 반면 교사로 배워라.`는 말을 했지. 극히 기분 나쁘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자네가 조선일보의 들러리를 서지 않았나 싶다네. 현재 조선일보는 정권과 시민사회와 벌이고 있는 절대절명의 치열한 패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한 방편으로, 객관적 설득력을 높이려고 과거에 논쟁에 끼지 않아서 색깔이 칠해지지 않은 소장 학자들을 동원(자발적으로 썼을 필자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표현이지만 신문사의 의도를 말하는 걸세)하고, 이어 원로들을 동원해 점잖게 꾸중하면서 말미에 무게를 싣고 있는 것으로 보이더군. 보다 원사로 직핍하면 우리의 역사와 이러한 작금의 상황에서 조선일보에 글을 쓴 행동은 자신의 신념을 밝힌 것이라 해도 실수요 과오였다고 생각하네. 학교에서 젊은 교사가 교장의 말도 안 되는 지시에 정당하게 반론을 펴면 말 꼬투리를 하나 잡아 `저런 버르장머리 없는 젊은 놈 같으니라고` 하면서 본말을 전도시키기 일쑤지. 우리 옛말에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지. 내가 너무 과도하게 감정적으로 비약했다면 용서하게. // // 불혹을 지나며 지천명에 가까워지면서 언뜻언뜻 드는 생각이 공자가 사람을 참 잘 파악했구나 싶다네. 나이 들면서 유혹을 떨치고 하늘의 순리대로 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면 그런 말로 경계했을까 싶네. 노욕만큼 추한 게 없다는데 하나를 얻으면 둘을 얻고 싶은 게 사람인지... // // 규익이, 자네는 우리의 자랑이라네. 수십 년 동안 한눈 팔지 않고 학문에 정진할 결과 국문학계 최연소 박사, 최연소 정교수, 엄청난 양과 질의 학문적 성과를 이루었지 않나. 가끔은 아이들에게 자네 이야기를 해 주면서 나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곤 한다네. 그러나 만에 하나 자네가 무의식적으로라도 명예를 탐했거든 진심으로 이 번을 교훈으로 삼기를 바라네. // // 글을 업으로 하는 자네에게 감히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네. 글이란 무엇인가. 선인들은 三端 중에 가장 위험한 것이 붓끝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역시 전교조 신문 편집실장을 할 때 리영희 선생께 컬럼을 부탁드린 적이 있지. 그런데 신문 만들 때마다 담당 기자가 애를 먹는 거야. 어떤 때에는 조판 들어가서도 교정지가 날아오곤 했거든. 어느 땐가 만날 기회가 있어서 `선생님 우리 신문 같이 작은 신문에 편하게 쓰십시오.`라며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정색을 하시며 `기록은 영원히 남는 건데 그럴 수 있나.`라고 하시더군. // // 자네에게 부탁한다면 이 기회에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보다 깊이 고민하기 바라네. 인류 역사에서 또 구체적으로는 우리의 역사와 사회에서 지식인의 진정한 구실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말일세. 성인이 되어 가슴으로 눈물 흘리며 읽은 『전태일 평전』이 떠오르네. 한자 투성이인 근로기준법을 읽으면서 `내게도 대학생 친구가 하나 있다면...`이라고 안타까워했다지. 나는 전교조 활동을 하면서 갖게 된 못된 편견이 하나 있다네. 소수를 빼고는 우리 나라 대학 교수들을 싫어하는 거지. 머리와 입만 있고 팔다리는 퇴화된 족속이 아닌가 하고 독설을 할 때가 있다네. 행동으로 정당한 편들기를 하지 못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았고, 어쩌면 그들의 도움이 절실해서 더 그러했는지도 몰라. 문득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인 사르트르와 하이덱거가 생각나네. 극우 파시즘에 행동으로 저항한 철학자와 나치에 협력한 철학자를. // // 이렇게 주절주절 사설을 늘어놓을 줄은 몰랐네. 과도한 말도 있겠지만, 글로는 여전히 성에 차지 않기도 하는군. 언제 얼굴 맞대고 술 한잔 하세나. 오해와 편견과 독선에 화가 나더라도 충심을 받아주기 바라네. // // 8월 초이틀 새벽에 // // 자네의 친구 신연식 씀 // // 추신: 메일이 다시 돌아왔길래 또 망설이다 자네한테 전화하고 다시 올리네. 이것이 나의 우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자위하면서 말일세. ////원문작성일 :: 2001/08/02 관리자에 의해 이전 게시판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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