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스츄어의 나라 대한민국


글쓴이:

등록일: 2009-09-20 12:49
조회수: 3021
 
제스츄어의 나라 대한민국


엊그제 총선 때만 해도 여당과 정부 당국자들은 IMF를 극복했다고 호들갑을 떨어댔다. 그런데 총선이 끝나자마자 그 IMF의 망령이 다시 우리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답시고 해왔던 구조 조정이 제스츄어 뿐이었던 것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시늉'만 내왔음이 들통나고 말았다. 총선 후에 실상을 드러낸 것이 경제문제만은 아니다. 한 뼘밖에 안되는 우리의 녹지가 흉악한 중장비의 굉음에 송두리째 벗겨져 가고 있다. 대한민국을 말아먹는 계층은 민족의식이고 나발이고, 미래에 대한 비젼이고 나발이고, 그야말로 가진 것은 텅빈 머리 뿐인 공무원 집단이라고 누군가 질타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이 하는 짓거리란 민원인들을 교묘하게 다루어 뇌물이나 받아먹는 것 이외에는 없다고 한탄하는 말을 누군가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다 그렇진 않겠지만, 그럴 듯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무원이란 국민의 심부름꾼이라고? 위 아래 할 것 없이 모조리 썩어나자빠져 있으면서도 뚫린 게 입이라고 입만 열면 '공복 타령'이다. 말 그대로 公僕인지 空腹의 불가사리인지 알 수는 없으되, 여하튼 큰 문제다. 말하자면 오늘날의 일부 공무원들은 국민의 공복인양 제스츄어만 남발하는 대표적 문제집단이다. 정부의 고관들이나 이른바 지도층 인사들도 제스츄어적 인간들이긴 마찬가지다.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체질화된 봉사정신이나 미래에 대한 비젼으로 나라일을 수행하는 사람이 과연 누굴까? 겉으로는 그야말로 경건하고 근엄한 표정들이지만, 기실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자신의 권력을 어떻게 오래도록 유지할 것이며, 자신의 사리사욕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관심의 초점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그런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행동들 모두가 제스츄어일 수밖에.

얼마전 이른바 386정치 신인이라는 작자들이 5∙18 전야에, 그것도 5∙18의 성지(?)인 광주에서 여자들을 끼고 술을 마시다 들통이 나고 말았다 한다. 그 작자들이 술을 마시든 물구나무를 서든 나같은 범부에겐 옆집 강아지 깨갱대는 것만큼이나 시큰둥한 사실이지만,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아니 썩어빠진 대한민국의 언론들이 받은 충격은) 그렇지도 않은 듯 하다. 그러나 이 사건을 순진하게 말하자면, 별볼일 없는 필부들의 집단인(더 정확히 말하자면 도덕적 인식의 수준에서 잠재적 범죄인 그룹으로 분류될 수 있는 우범 집단인)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을 보통 사람 이상으로 보아온 우리 국민들의 순진한 착각을 고맙게도(?) 일깨워주는 해프닝이었다. 그러니 이 인간들은 제스츄어 마저도 취할 줄 모르는, 아주 우매한(?) 작자들이었던 것이다. 만약 그들이 이런 불의의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고 정치의 한 복판에 들어가 교활한 선배들로부터 처세술을 배워가며 제스츄어의 진수를 체득했더라면, 아마도 순진한 대한민국 백성들은 오랜 세월 그들의 가면만을 보면서 감읍하여 마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거룩한 상호를 떠올리며 이 땅에 파라다이스를 건설하실 구세주로 떠받들었을 것이 아닌가?

그 작자들의 해프닝이 있던 날로부터 얼마 뒤 환경운동과 공명선거운동 등을 통해 이 땅의 시민운동을 선도하면서 신물나도록 언론을 누비던 한 인물과, 현직 대통령의 경제 교사라던 어떤 경제학자가 어린 학생과 여직원을 성추행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먹물 먹은 인간 가운데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드물게 쓸만한 일을 한다고 생각해온 나로서는 참으로 씁쓸한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허리 아래 일이야 남자 치고 공자님인들 마다하셨겠는가만, 그래도 그 대상과 방법이 너무 추잡하여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대학교수이니, 그 학생이 설혹 자기 대학의 학생이 아니라도 제자나 마찬가지 아닌가. 더구나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하여 겨우 한 학기를 보내고 있는 솜털 보송보송한 1학년이니, 그 교수로서야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무슨 변명이 있을 수 있을까. 알 것 다 아는 것이 요즈음의 대학생들이니 부산에 예약해놓았다는 호텔을 찾아간 그 여학생에겐들 잘못이 없을 순 없겠으나, 그러나 그게 교수로서 어디 온전한 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던가. 미끈하게 생긴 얼굴을 들고 TV에 등장하여 사자후를 토하던 그의 행동 역시 결국 제스츄어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대통령의 경제교사 역시 마찬가지다. 왜 근무중인 여직원을 불러내 성희롱을 하는가 말이다. 자신의 권력으로 그쯤이야 탈 없이 할 수 있으리라 믿었겠지만,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게 통할까? 그 정도의 판단력으로 대통령에게 경제학을 가르쳤다면, 지금의 경제 위기도 그와 무관치는 않은 것 아닐까?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대학을 비롯한 교육계도 제스츄어의 무대임은 마찬가지다. 교육개혁을 해야한다고 외치며 펼치는 정책의 대부분이 개혁과는 역행하는 것들 뿐이다. 대학총장들마다 무슨 무슨 교류를 합네 하며 해외로 돌아다니며 외국대학의 관계자들을 만나긴 하는 모양인데, 대부분은 아까운 외화나 낭비할 뿐이다. 국내에서도 무슨 기관끼리 제휴를 합네, 도서관 교류 협정을 맺으러 갑네 하면서 열심히들 돌아다니지만 도대체 무슨 생산적인 결과들을 만들어내는지 알 수가 없다. 대학내에서도 대학의 개혁을 위해 무슨 무슨 위원회를 만들고 자못 근엄한 표정들로 밥 먹듯이 회의들을 하긴 하는 모양인데, 내 놓는 의견들을 들여다 보면 참으로 가관인 경우가 허다하다. 개혁을 하려면 개혁적 정신으로 무장한 인사들에게 소신을 펼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지금의 대학들은 전혀 개혁과는 어울리지 않는 인사들이 판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니 이들에게 채찍을 가하면 가할수록 이 나라의 교육과 대학이 자꾸만 반대 방향으로 굴러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그러니 밤낮 한국의 교육이 요모양 요꼴일 수밖에 없지.

자손만대의 번영을 위해서는 자연을 보호해야 하고, 잘 보존된 자연만이 세계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절대적 요건이라는 점을 입 달린 인간치고 누구나 부르짖는다. 그리고 관공서의 높은 양반들로부터 말단 직원까지 틈만 나면 어깨띠 두르고 강가에 떨어진 휴지조각을 줍는 체 하는 사진들을 언론을 통해 잘도 내 보낸다. 모두 제스츄어다. 한 손으로는 휴지를 줍는 척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자연을 파괴하는 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그들의 생리다. 단순히 무식의 소치라면 가르쳐 깨우치기라도 하겠는데, 자연을 파괴해가면서 사리사욕을 취하고 있는 그 교활함이야말로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장애인의 날이라는 게 있다. 1년에 단 하루만이라도 장애인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위해 몸 성한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자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이 날 하루 청와대에서 장애인 몇 명 초대해다가 점심식사 한 끼 대접하는 것으로 이 나라 정부나 기관의 의무를 때우려고 한다. 장애인들이 뜻만 있으면 우리나라 어느 곳에도 접근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매스터 플랜을 세우는 것이 시급하다는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그런 날을 제정한 본 뜻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명의 장애인들을 사진에 박아 언론매체에 내보내는 것으로 '몸 성한' 사람들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이 기막히는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찌 이런 일들 뿐이랴. 부모는 부모 시늉만 내고, 자식은 자식 시늉만 내고, 선생은 선생 시늉만 내고, 학생은 학생 시늉만 내고, 장관은 장관 시늉만 내고, 구청장은 구청장 시늉만 내고, 동직원은 동직원 시늉만 내고….

우리나라는 전 국민이 시늉만 내는 국가다. 모두들 제스츄어만 열심히 해대는, 참으로 이상한 나라다.
-답글달기     -목록보기  -글 쓰기
의견(코멘트)을 작성하실 수 없습니다. 이유: 30일 이상 지난 게시물
△ 이전글: 도전과 선택
▽ 다음글: 불혹에 찾아온 깨달음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D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