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교수와 조교


글쓴이: 백규

등록일: 2002-08-08 06:42
조회수: 4631
 
교수와 조교


70년대 중반, 지방 어느 국립대학에 근무했던 衁교수로부터 들은 이야기 한 토막. 어느 날 밤 衁교수는 길을 가다가 술에 취해 골목이 떠나가도록 온갖 욕설을 퍼부어대며 지나가는 자기 과의 조교를 발견하곤 슬그머니 옆 골목으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처자를 거느린 40대의 조교로서 교수들의 잔심부름은 물론이려니와 그들 집안의 각종 경조사에 약방의 감초격으로 10년 가까이 뛰어다니며 헌신해 온 그였다. 그 과정에 교수들로부터 화풀이의 대상이 된 적은 어찌 없었을 것이며 실수했다고 꾸중 들은 일 또한 어찌 없었겠는가. 여러번 좌절하긴 하였으나 언젠가는 교수가 되어 보겠노라 절치부심하고 있던 그였기에 그런 수모를 달게 받았을 것이다. 조교로 발만 들여 놓으면 비교적 순탄하게 교수가 될 수 있던 호시절부터 시작하여 조교에서 교수로의 발탁이 거의 불가능해진 시절까지 그는 조교노릇을 지겹도록 해온 셈이었다. 결국 거반 늙어버린 40대 중반에 교수로 채용되긴 하였지만, 이 조교의 고생담 속에는 지난날 이 땅의 조교들이 겪어야 했던 힘든 역사가 압축되어 있다.

지금 교수들 가운데 대학원 시절 적어도 한 두학기 조교로 근무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 교수연구실 한 구석의 작은 책상에서 묵묵히 책을 보다가 가끔 교수의 잔심부름 정도 해 드리던 경험들을 가지고 있으리라. 그렇게 교수의 숨결을 느끼면서 지낸 짧은 기간이 후일 자신의 연구생활에 큰 보탬이 된 점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소수의 경우였겠지만, 심부름의 강도와 빈도가 지나칠 경우 마음 가득 불만스러움을 느낀 적도 있으리라. 대부분의 사립대학 인사규정에 조교는 전임교원 직위의 하나로 분류되어 있으며, 걁대학의 인사규정을 예로 들면 조교의 업무는 "해당 대학장 및 해당 학과장의 지시에 따라 교수의 연구와 강의를 보조하거나 그 준비를 위한 사무를 보조한다"고 되어 있다. 연구와 강의를 보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통념상 교수가 논문을 쓰는 데 필요한 문헌 및 자료의 수집ㅗ정리, 강의에 관한 사무연락ㅗ출석점검 정도의 일이 아닌가 한다. 물론 배고프면 연구도 강의도 할 수 없을테니 그러한 교수를 위하여 라면이나 커피를 끓이는 일도 넓게 보면 연구와 강의를 보조하는 일이며 교수를 대신하여 은행이나 구청에 가는 것도 교수로 하여금 연구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니 조교의 임무라고 강변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조교 임무의 본령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돈머릿수가 달라진 요즈음 대부분 한 학기 등록금 면제의 혜택이 고작일 조교의 급여로, 과중하다고 생각되는 업무에 대하여 어떤 조교인들 불평 안 할 것인가. 대개 조교라는 직책이 교수직에 연결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던 70년대 중반까지 조교에게 '몸종'이라는 닉네임이 붙어다니게 된 것도 교수에게 충성을 바쳐야 했던 당시의 사정 때문이었다. 필자를 포함한 요즈음 대부분의 교수들은 자신의 연구실에 조교를 두지 않는 듯 하다. 진득하게 앉아 있는 학생도 드물거니와 교수 자신도 사생활을 침해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 과사무실을 따로 두고 필요할 경우 전화로 호출하는 것이 관행으로 정착되어 있다. 그 업무 역시 연구나 강의의 보조와 같은 정신적 작업이기보다는 대개 '발품을 팔아야 되는' 勞役일 경우가 많다. 그러니 어느 기회에 교수의 연구 태도와 방법을 익힐 것이며, 등록금을 면제해 주어 대학원생들로 하여금 연구에 정진할 수 있게 한 조교제도의 취지는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나는 특정 연구에 조교를 실질적으로 참여시켜 볼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착수 직전의 단계에서 그만두곤 하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부담감 때문이었다. 그들의 수고를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심부름센터에 하챦은 부탁 한 건만 하려 해도 수만원이 들어가는 요즈음이다. 중ㅗ고등학생 몇명만 가르쳐도 몇십만원의 수입을 올리는 현실이나 모든 수고를 물질로 보상받으려는 요즘 학생들의 타산적 사고방식은 더욱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돈이 풍족한 것도 아니요, 하다못해 강의 몇 시간 떼어줄 수 있는 형편도 못되며 더더욱 대학에 이력서를 냈을 때 도와 줄 길이 없는 나같은 수재는 그저 조교제도가 없는 것으로나 생각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대학에서 학문적 전통을 단절시키지 않으려면 교수와 조교가 제 자리를 찾아야 하고 양자간의 관계가 새롭고 발전적인 모습으로 정립되어야 한다. 교수가 조교에게 제공해야 하는 것은 학문에 대한 교수의 신념과 축적된 노하우다. 교수가 조교에게 요구해야 할 것은 진지한 배움의 자세다. 아무리 바쁘고 각박한 세상이긴 하지만 조교들도 불만을 갖기보다는 긴 안목을 갖추어야 한다. 왜 학문의 길에 들어섰는가. 이왕 들어선 길이라면 철저한 프로의식을 갖고 덤벼들어 승부를 겨루어 볼 투지는 없는가. 눈 앞의 이해를 따지기보다는 학문 탐구의 먼 길을 가는 데 필수적인 장비를 확실히 갖추어 두는 것이 오히려 현명하지 않겠는가. 그러자면 스스로를 채찍질 하라.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배우고자 하는 열의와 자세는 굳게 닫힌 교수 연구실의 문을 활짝 열 수도 있을 것이다.
<2001.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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