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교육부장관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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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09-09-20 12:50
조회수: 2685
 
교육부장관님께


우선, 난마같이 얽힌 한국교육의 구조개선을 위해 노심초사하고 계신 장관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잠시 이곳 미국에 나와 공부하고 있는 현직교수입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장관님이 취임하신 이후부터 활발해지기 시작한 교육개혁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물줄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만약 여기서 멈칫거리거나 후퇴한다면, 우리나라는 이제 더 이상 미래를 기약할 수 없게 됩니다. 저는 이미 엊그제 이 자리를 통하여 일부 서울대 교수들의 반개혁적 발상에 대한 비판을 가한 바 있습니다<"서울대와 그 대학 일부교수들의 시대착오적 발상을 비판함":1998. 11. 13. 11:49>.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서울대 교수들의 집단이기적 행동은 개혁에 대한 보수반동, 역풍 혹은 저항의 생생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에 하나 장관님께서 이런 시대역행적 잔물결들에 현혹되시거나 흔들리지 않으실까 우려되기도 하고 또 현안 중의 하나인 정년문제에 관한 제 의견을 몇 자 적어보려 합니다. 한국의 교육개혁은 대학개혁이 선행되어야 하고, 서울대의 개혁을 통해서만 대학개혁이 가능하다는 점은 이제 상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제기된 초중등학교 교육의 문제점들이 모두 대학입시에서 근원된 것들이고, 그 한국 대학들의 관행과 제도의 척도 역할을 자임해온 것이 서울대학이기 때문입니다. 좀 안된 말씀이지만, 한국의 모든 여타대학들은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서울대의 일거수 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한다면 과언일까요? 한국의 모든 대학들이 언제부턴가 서울대 닮아가기에 나섰다는 점은 서울대의 개혁이 서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는 일입니다. 한국 대학인들의 소신없음도 중요한 이유의 하나였겠지만, 그런 흐름에 초연하거나 낙오되었다가는 현저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었던 것입니다. 서울대에 대한 개혁을 자꾸만 미루어 온 결과 오늘날 한국 대학사회의 개혁이나 교육계 전체의 개혁을 어렵게 만든 것입니다. 말하자면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미루다가 이제는 가래로도 못 막게 된 것이죠. 뜻 있는 인사들이 종종 제기하는 서울대 폐지론 역시 한국교육의 정상화와, 그로 인하여 가능해질 민족의 중흥에 서울대의 뼈를 깎는 개혁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깨달은 데서 나온 발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대학의 개혁은 지금도 전혀 불가능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특정대학출신 교수 비율을 법으로 정하고자 한 교육부의 방침은 그 첫 단계로서 탁견입니다. 그 문제야말로 우리의 현실에선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급선무입니다. 현재와 같은 교수집단의 구조나 평가제도로 획기적인 학문의 발전이나 교육의 내실화를 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교수집단의 구성을 전폭적으로 바꾸지 않고는 서울대의 개혁은 불가능합니다. 누차 지적되어 온 바와 같이 이곳 미국 대학들의 자기 대학 출신교수 비율이 미미한 데 반해 서울대학의 자기대학 출신교수 비율은 95%를 넘고 있습니다. 게다가 손해를 보고 있다고 여기는 여타대학들까지 이런 일에 가세하여 모두 자기 출신, 자기 제자들을 교수로 심는 데 혈안이 되어 있으니 대학사회에서 어떻게 보편성과 객관성을 생명으로 하는 학문이 발전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그런 풍토 위에서 어떻게 올바른 학생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겠어요? 그런 문제를 대학 자율로 하지 못하고 법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점이 아쉽긴 합니다만, 그 문제는 이미 대학 자율로 해결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나 그 시행의지를 장관님께서는 분명 가지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그런 개혁적 발상에 대한 수구집단의 조직적 저항이 얼마나 거셀 것이냐는 겁니다. 만약 그런 저항 때문에 장관님의 철학이나 의지가 꺾이신다면, 이제 우리 교육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그 대학 교수들도 개혁의 올바른 방향에 대하여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반개혁의 선봉에 선 몇몇 교수들의 목소리를 서울대 전체의 목소리로 판단치 마시기 바랍니다. 진정으로 자신있는 교수라면 제도가 어떻게 변하든, 그것이 올바로만 바뀐다면 자신의 위치에 무슨 위협이 되겠습니까?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이른바 '대학자율'이란 기득권 수호를 위한 방어논리로서의 그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로 '대학자율'을 외쳤어야 하는 시대에는 비겁한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 분들이 이번엔 서슴치 않고 나서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기득권을 지켜야겠다는 방어본능의 발현으로밖엔 해석할 수 없지요. 적어도 교육에 있어서만은 뚜렷한 현실의식을 지니고 있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장관님을 든든하게 뒷받침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정년단축 문제에 대해서 한 말씀만 올리겠습니다. 저는 장관님이 취임하시면서 이제 적당히 지내던 교사나 교수들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교사나 교수들에 대한 엄정한 평가를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교단의 정화가 이루어지리라는 기대였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소관부서도 아닌 기획위원회가 전면에 나섬으로써 이 문제는 경제논리에 파묻힌 느낌이 듭니다. 물론 돈이 가장 큰 문제라는 점은 저도 동의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교단의 구조조정은 좀더 복합적인 차원에서, 시간을 갖고 진행되었으면 합니다. 정년이란 현실이야 어떻든 의미나 어감상 그 나이까지 '자리를 보장한다'는 말입니다. 만약 지금 기획위원회의 안대로 60세로 정한다면, 20대에서 50대에 걸친 교원들(아직 정년이 되려면 3, 40년이나 남아 있는) 가운데 문제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실상의 특혜지요. 나이 든 사람들 못지 않게 젊은 사람들에게도 교육자로서의 문제가 없지 않을 듯 한데, 그럴 경우 이들에게도 60의 정년이 보장된단 말인지요? 제 말씀의 요점은 이제 교사나 교수를 '제대로, 엄정하게' 평가하자는 것입니다. 평가만 제대로 된다면 법정 정년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 엄정한 평가를 견디지 못할 경우, 50에 그만 둘 수도 있고 40에 그만 둘 수도 있는 문제 아니겠습니까? 우리 교육계의 문제는 사실 정년이 길다는 점에 있지 않고,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데 있습니다. 대학의 문제, 교수임용의 문제 등도 모두 평가제도의 부실에 그 원천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만약 한국적 정실주의만 배제할 수 있고 엄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제도만 만들 수 있다면, 정년제도는 없애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만약 우리의 현재 상황이 한 두해 버텨줄 수만 있다면, 정년논의를 그 뒤로 미루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물론 그 기간 동안 교원(초, 중등, 대학)에 대한 국가 차원의 평가제도를 획기적으로 보완해야겠죠. 그 평가제도의 시행을 통하여 능력과 자질이 없는 교원은 자연스럽게 퇴출됨으로써 교단의 물갈이는 늘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정치, 경제, 사회 등 제반 분야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 없으시리라 봅니다. 그러나 발상을 조금만 바꾸어주신다면, 교육계의 현 상황을 좀더 발전적으로 만들어 갈 수는 있으리라 봅니다. 우리의 교육과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하여 장관님의 현명하신 판단을 기대합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 이 글은 1998년 필자가 미국에 있을 때, 교수임용쿼터제에 대한 논란을 보면서 쓴 글이다. 그 때에 비해 지금의 상황이 얼마간 바뀌었을지는 모르나, 근본적인 바탕은 변한 것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그냥 수정하지 않고 실어둔다. 뜻 있는 분들의 견해 표명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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