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도서관 타령


글쓴이: 백규

등록일: 2002-08-08 06:46
조회수: 3360
 
-신서유견문(4)-

도서관 타령


몇 년전 대학평가가 시작되었을 때 우리나라 대학들의 근심 가운데 하나가 낙후된 도서관 문제였다. 평가 항목들 중 도서관의 점수 비중이 아주 크기 때문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장서의 분량이 빈약하다는 것이 가장 눈에 뜨이는 문제였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모모 대학들은 청계천의 헌 책방들을 돌며 교과서나 월간지 등을 가릴 것 없이 차떼기로 구입하여 장서 수를 채웠다고 한다. 그렇게 채워놓은 장서들에 대하여 평가팀들은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은 채 후한 점수를 주었다는 것이다. 이 소화(笑話)같은 실화에 우리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사실 한국 대학의 학문적 낙후성은 도서관의 부실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아니 도서관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으니 부실을 나무랄 일도 아니다.

얼마전부터 국내 대학들에 도서관학과(혹은 문헌정보학과)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있는 판이니 요즈음 도서관에서 사서의 직함을 지니고 있는 직원들을 보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얼마전까지만 해도 도서관에서 정규 사서의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더구나 대부분의 대학들에서 도서관은 인기가 없는 곳이어서인지 직원들이 가길 꺼려했고, 그 이유에선가 순환근무라는 미명하에 대학직원들을 주기적으로 순환배치하곤 했다. 그러니 애당초부터 도서관 직원들의 전문성은 인정될 수가 없었다. 그저 도서관이란 학생들이 시험공부나 하는 독서실이었고, 들어오는 책을 적당히 분류하여 서가에 꽂고 대출이나 해주는 '책 대여점' 이상의 장소는 아니었다. 대학의 운영자들이 도서를 정확히 분류한다든가 도서관의 전문성을 살리기 위한 각종 아이디어들을 창출하고 대학의 구성원들에게 최상의 학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도서관의 역할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마저 갖고 있지 못한 원시적 상황은 지금도 크게 나아지지 않은 듯 하다. 지금도 각 대학들이 장서의 양을 자랑하지만, 실제 그 내막을 들여다 보면 한심할 정도다. 예를 들어 어떤 대학이 30만권의 장서를 갖고 있다고 하자. 그러나 알고보면 책 한 종당 3, 4권의 복권(複卷)들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10만권 내외의 장서를 갖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그 출간연대를 보면 더욱 한심하다. 인문학 관계 도서들이야 나이를 좀 먹었어도 가치가 인정되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이공계의 책들은 대체로 수명이 수년 이내다. 그럼에도 이미 볼 가치도 없을 만큼 낡아빠진 책들을 소장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단순히 장서의 양을 늘려야 하는 현실 때문이다. 신간 구입 예산을 보면 하품이 나올 정도다. 요즈음 나오는 거질(巨帙)들이나 고가(高價)의 CD들은 아예 구입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형편들이다. 몇 년전에 중국의 사고전서(四庫全書)가 영인출판되어 국내에 시판된 적이 있다. 당시 가격이 2,200만원이었는데, 사실 개인으로서는 구입하기가 대단히 버거운 가격이었다. "대학도서관들이야 설마 그 책을 구입하겠지" 라고 기대한 나는 그 회사의 영업사원의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시판된 지 한 달이 넘도록 겨우 두세 학교에 팔린 정도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 후 얼마나 많은 대학에서 그 책을 구입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그만큼 우리나라 대학도서관들의 영세성을 짐작할 수 있었다. 몇 년 전에 조선왕조실록이 CD로 제작되어 시판된 적이 있다. 당시 가격으로 500만원이 넘는 고가였다. 이 역시 소수의 대학만이 구입할 수 있었다. 더 슬펐던 경우는 이 CD가 그 후 불법으로 복사되어 3∼5만원에 팔릴 때에서야 상당수의 대학들이 이 불법 복사판을 구입했다는, 확인할 수 없는 소문을 들었을 때였다. 어쨌든 국내 대학들의 수준을 놓고 볼 때 상당히 근거 있는 루머이었음에 틀림없다고 본다.

이 뿐 아니다. 몇 년전부터 국내 대학들은 도서관을 전산화 한다고 야단들이었다. 전산화에 뒤지면 흡사 이 땅에서 도태될 것처럼 서로들 부산을 떨었다. 전산화 완료 사실을 다른 대학들보다 먼저 언론에 공표해야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이나 한 듯 경쟁들을 벌였다. 그러나 전산화를 완료했다는 것이 고작 출입자 자동체크, 도난방지용 바코드 부착 등이 고작이었다. 물론 그것도 큰 업적이긴 하나 동네방네 떠들어댈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 후로 열심히들 전산화에 몰두하여 데이터베이스화한 도서관 장서들을 대학의 홈페이지에 띄워놓고 단말기 상에서 검색도 하게 만들고, 대출 반납시의 번거로움을 바코드 인식작업 하나로 단순화시킨 수준에까지 발전하긴 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참으로 한심한 것은 각 대학들의 폐쇄된 의식의 노출이다. 국내 최대의 장서를 자랑한다는 서울대학이라고 해야 장서량이 100만권 남짓이다. 그나마 일제시대 총독부시절에 모아놓은 도서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하니 실제 유용한 정보의 측면에서 따지면 오륙십만권이 고작일 것이다. 그러니 다른 대학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기십만권 남짓한 장서를 가진 대학들이 모두 제 대학에만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놓았으니 다른 대학들의 프로그램과 '호환(互換)'될 리가 없다. 만약 처음부터 국내 대학의 도서관장들이 서로 모여 각자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을 함께 모아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각 대학도서관의 장서나 자료를 서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면 시간 절약 돈 절약에 장서량 늘어나는 격이 되니 꿩 먹고 알 먹는 일이 아니었을까. 어쩌자고 쉬쉬하며 각자 프로그램을 개발함으로써 국가적인 낭비를 초래하고 말았을까. 만약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ILL(inter library loan) system"을 본받아 대학도서관들 사이의 협조체제를 구축했더라면, 기십만권의 장서량이 수백, 수천만권으로 늘어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전체로 보아 얼마나 학문적 수준이 향상될 수 있었겠는가. 어찌하여 대학에서까지 그 째째하고 옹졸한 근성들을 버리지 않고 있을까. 진정한 경쟁이란 그런 데 있지 않거늘, 참으로 통탄스러운 '속 좁음'이 이 나라를 망치고 있지 않은가.

미국의 힘은 대학에서 나오고, 대학의 힘은 운동부도 아니고 벤쳐기업도 아니며 제대로 된 연구에서 나오며, 그 연구의 핵심은 도서관이라는 사실을 나는 1년 동안 뼈저리게 확인하고 돌아왔다. 그 뿐인가. 미국의 대학 도서관들은 사실상 '하나'로 합쳐져 있었다.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까지도 하나로 합쳐진 상태였다. 도서관의 통합검색프로그램도 절묘하거니와 정보 확인 후의 서비스 또한 환상적이었다. 어느 대학의 도서관에 있건 (특별한 소수의 자료만 빼고는)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었다. 단말기로 신청을 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택배로, 우편으로 즉시 날아오는 것이었다. 돈 한 푼 안내고(물론 등록금에 포함되어 있긴 하겠지만) 서부에 앉아서 동부 아이비리그의 한 대학 도서관으로부터 귀한 책이나 마이크로필름을 며칠 내에 받아본다고 생각해보라. 그 얼마나 환상적인가. 국내에서 도서관들의 원시성 때문에 분통을 많이 터뜨린 바 있는 나로서는 그런 경험을 하고나서 감격의 눈물이 솟아날 지경이었다.

서고에 들어가 보아도 쓸 데 없이 두 권 이상 겹쳐 있는 책들은 볼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서고가 좁은데 같은 책을 두 권이상 꽂아놓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책을 대출해 갔을 때는 'recall' 신청만 하면 대출 기간이 끝나자 마자 즉시 돌아오게 되어 있으니 같은 책을 여러 권 꽂아놓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수시로 대출기간 만료를 알려주는 메일을 보내주기 때문에 본의 아닌 지연으로 연체료를 물 필요도 없다. 뿐만 아니라 단말기 상에서 대출기간 연장을 하면 'recall'된 도서가 아닌 경우에는 얼마든지 연장이 가능했다. 우리나라처럼 얼마의 기간이 지나면 끙끙대면서 책들을 들고가 책의 안부를 도서관 직원들에게 확인시킬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중요한 자료들 대부분은 마이크로필름으로 만들어져 있고, 수십대의 기계를 갖춘 큰 규모의 마이크로필름실이 있어 언제든지 자료를 열람할 수 있고 복사를 할 수도 있다.

이런 기본적인 요소들 외에 미국의 대학도서관이 좋은 점은 연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데 있다. 그렇게 많은 학생과 교수들이 드나들어도 핸드폰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물컵 하나 들고 열람석에 앉을 수 없다. 말소리를 낼 수도 없다. 담배를 피우는 몰상식은 절대 금물. 건장한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고용하여 수시로 순시하며 질서를 잡으니 감히 도서관에서 잡생각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열람석 주변의 벽을 따라 촘촘히 박혀있는 전원과 전화선 잭에 누구든 노트북 컴퓨터를 연결하고 원고를 작성하거나 인터넷에 들어가 정보를 검색하고 출판사에 송고를 할 수도 있다. 직원들 모두는 이용자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해주지 못해 안달인 듯 하고, 조용하고 쾌적한 분위기까지 마련되어 있으니 공부는 저절로 될 수밖에.

뿐만 아니라 쉬기 좋아하는 미국에서도 도서관만큼은 쉬는 날이 별로 없다. 더구나 한 대학에서도 새벽까지 여는 도서관이 수두룩하고 여학생의 경우 원하면 새벽시간에는 집까지 에스코트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도서관에 구비되어 있는 컴퓨터는 최고성능에 최신의 기종들이다. 어떤 도서관이든 서가 옆에 쾌적한 열람석들을 만들어 두고 있으며, 책 보기에 적당한 조도의 램프들까지 구비되어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가끔 쉴 수 있는 안락의자까지 마련되어 있다. 그러니 도서관이 교수, 학생들이 함께 모여 연구할 수 있는 중심일 수 있는 것이다. 그 뿐 아니다. 일반인들도 얼마든지 출입할 수 있다. 필자는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와서 책을 보는 주부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요컨대 그곳의 도서관들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공의 소유물이란 관념이 강하다. 대학 도서관들이 어느 지역의 도서관들과도 네트뚺을 형성하고 있으며, 시민들은 자유로이 드나들며 소장된 자료들을 마음껏 이용한다.

필자가 잠시 머물던 대학의 도서관은 'Gift Center'라는 것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중고책들로 가득했고, 그들은 그 책들을 그야말로 엿값에 팔고 있었다. 대부분의 책들은 도서관의 서가로부터 퇴출된 복권(複卷)들이었고, 나머지는 교수나 일반인들로부터 기증받은 것들이었다. 가끔 희귀한 도서들도 나오는데, 이런 것들은 따로 모아 'Silent Auction'이란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책들은 50센트에서 10달러 이내의 가격이었으며, 대체로 3, 4달러가 대종을 이루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1800년대에 간행된 책들도 자주 눈에 띄었는데, 그곳에서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지 10달러 이내의 가격이 매겨져 있기도 했다. 필자는 시간만 나면 그곳에 가서 살다시피 했다. 우리나라 고서시장에서 1960년대의 책들까지 비교적 고가(高價)에 팔리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환상적인 일이었다. 필자는 1800년대에 출간된 코울리지(S.T. Coleridge)의 시집 초판, 걸리버 여행기, 멜빌의 해양소설들, 어거스틴의 고백록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귀중한 책들(내려 잡아도 1900년대 초기 간행물들)을 포함하여 수백여권의 책들을 아주 싼 값에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러니 '선물(gift)'일 수밖에. 미국이 비록 200년 남짓된 신생국(?)이긴 하나 유럽문명의 연속선 위에 서 있는 나라이어서인지 책에서만큼은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교수들과 학생들이 그 방을 드나들면서 한 보따리씩 책을 구입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사철만 되면 아파트 쓰레기장마다 새 책들이 수북히 쌓이는 우리네 현실을 생각하면 너무 부러운 풍경이었다. 책을 아주 싼 값에 파는 이벤트는 대학도서관 뿐 아니라 동네마다 있는 공공 도서관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 뿐이랴! 서점들(예컨대 Barns & Noble 등 대형서점)에서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아주 좋은 책들을 할인 가격으로 파는 것이 일반적인 풍경이었다. 미국에 있는 동안 정기적으로 대학 도서관, 공공 도서관, 서점들을 순례하며 좋은 책들을 싼 값에 구입하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미련스럽게 팔리지도 않는 책의 정가를 고수하며 서가에 몇 년씩 묵혀두다가 끝내는 폐지공장으로 보내는 우리나라 서적시장의 현실을 생각하면 참으로 부러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도서관들을 돌아다니며 목격한 현상 가운데 무엇보다도 부러운 것은 동네 도서관의 서비스나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진지한 모습들이었다. 이곳의 주 이용객들은 주부들과 노인들, 초중등학생들이었다. 초중등학생들이라 해도 우리나라처럼 시험공부하러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부대행사로 여는 각종 과외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학생들이야 그렇다치고 놀라운 것은 주부들과 노인들이다. 구부정한 노인들이 책들을 들고와 반납하고 서가를 돌며 책을 찾는 모습, 주부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와서 두리번거리며 책을 찾는 모습은 선진국의 저력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실감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점심 때만 되면 여편네들끼리 히히닥거리고 몰려다니며 널찍한 식당방에서 퍼질러 앉아 걸신들린 모습으로 쳐먹어대는 우리네 주부들을 생각하며, 할 일 없이 공원에 나와 고스톱을 치거나 먼 하늘만 우두커니 바라보는 우리네 노인들을 생각하며 나는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의 주부들과 노인들이 꼬마들 손을 잡고 동네 도서관에 나와 독서에 빠질 수만 있다면, 우리나라의 현재 모습은 180도 달라질 수 있을텐데. 그러나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악화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미국의 이러한 노인이나 주부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도서관에 나오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어려서부터 그런 분위기 속에서 커 왔기 때문에 나이 들어서도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10m에 한 집씩 룸살롱이요, 갈비집이요, 다방이요, 노래방이니 우리가 가서 우리의 내면을 가꿀 곳은 그 어디란 말인가. 우리에게 도서관이 과연 있는가. 국립도서관이라고 하는 곳을 가 본 사람은 느꼈겠지만, 그 서비스나 편의시설이 미국의 동네 도서관 수준에도 미치지 못함을 누구나 느낄 수 있으리라. 그러니 어디에 틀어박혀 있는지 알 수도 없는 지역 공공도서관들의 실정이야 물어 무엇하리요? 도서관이란 으레 학생들이 찾아가 노닥거리거나 시험공부 하는 독서실 쯤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실정이다. 도서관 관계자들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만나면 예산타령이나 하고 업무량 탓이나 하는 것이 일쑤다. 위정자들의 무식함에 실무자들의 무능과 게으름까지 가세한 형편이니 우리나라의 도서관은 과거∙현재도 없었지만 미래 역시 아예 없는 셈이다.

우리의 모습을 바꾸려면 전 국민이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삶에 대하여 진지해지기 위해서는 인류의 축적된 경험을 겸허하게 배워야 한다. 그러려면 도서관을 확충하고, 도서관 이용을 생활화해야 한다. 도서관 이용의 생활화나 독서 열풍은 단기간의 캠페인으로 이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구부정한 노인들이 손자녀들을 이끌고 도서관을 찾아 자신들의 진지한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일 없는 주부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음식타령, 술타령이나 할 것이 아니고 장바구니를 든 채 도서관을 찾는 일이 생활화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보고 경을 읽지 않아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진지해지고, 독서를 생활화하게 된다. 그러려면 도서관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도서관을 곳곳에 세워야 한다.

지금 한국의 대학에 도서관이 없다. 아니 도서관에 대한 의식 자체가 없다. 도서관의 전문가도 없다. 가장 만만한 곳이 도서관이다보니 직원들도 그곳에서 근무하길 꺼려한다. 도서관의 서비스가 무엇이고, 어떻게 고객들을 상대해야 되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니 학생들도 적당히 쉬어가는 곳쯤으로 여긴다. 수시로 울려대는 핸드폰, 자욱한 담배연기, 웅성거림, 마구 다루어지는 책들, 도서관 앞 뜰에서 수시로 벌어지는 시위대의 마이크 소음 등등. 한국의 대학들이 진정한 대학일 수 없는 이유를 한국의 대학도서관들은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대학의 핵심이 도서관이라는 점을 알고 있는 한국의 학교 운영자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총장이나 교수들 가운데 그 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몇%나 될까? 하루중 도서관의 서고에서 만날 수 있는 교수들의 수는 과연 몇이나 될까? 1년중 총장은 단 한 번이라도 도서관에 가보기는 하는 것일까? 한국에서 도서관의 참담한 실태를 알고 걱정하는 지도층 인사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툭하면 야구장에 나가 공 던지기나 좋아하는 문화부 장관은 단 한 번이라도 국립도서관에 찾아가 그 참담한 모습을 본 적이 있을까? 아니 그곳에 갔다손치더라도 무엇이 참담한 모습인지 알고나 있을까?

한국이 망해가고 있다. 아니 한국인들의 뇌가 텅텅 비어가고 있다. 그 텅빈 뇌 속에 들어차는 것은 천박한 물질숭배의 망령뿐이다. 한국이 침몰하고난 몇 천년 뒤의 인류학자나 고고학자들은 발굴해낸 한국의 옛 터에서 도서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는 점을 한국 멸망의 큰 원인으로 꼽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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