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보직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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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09-09-20 12:53
조회수: 3439
 
보직이 뭐길래


언젠가 필자는 은사님의 회갑논문집에 그 분의 학문세계를 조망해 달라는 청탁을 받은 적이 있다. 제자로서 은사의 학문세계에 대하여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한국적 미덕(?)을 내세우며 사양했지만 결국 맡게 되었다. 그 분의 학문이야 어디에 내 놓아도 꿀릴 것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객관적인 입장에서만 쓴다면 필자가 제자라서 흠이 될 일은 아닐 성 싶었다.

그러나 평소부터 글자 한 자 때문에 고민하기 일쑤이던 필자는 책이 돼 나온 뒤에 질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제목, 목차, 본문 등에 '○○○교수'라는 은사님의 직함이 모조리 '○○○학장님'으로 바뀌어 있는 게 아닌가. '무엄한 녀석'이라고 개탄하며 은사님의 직함을 바로잡기 위해(?) 내 글에 손 대었을 그곳 교수들의 표정이 떠오르면서, 감히 항의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다만 필자의 생각을 이해못한 채 결국 내 글 자체를 손상시키고 만, 그 곳 교수들의 무심함만 한동안 야속하게 생각될 뿐이었다.

그로부터 한참 뒤 냉정을 되찾고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교수'보다 '학장'이 훨씬 빛나는 직함이라고 여겨온 그들의 고루하기 짝이 없는 의식으로부터 빚어진 해프닝이었음을 나는 결국 깨닫게 되었다.

대학사회에서 교수와 보직의 관계는 무얼까? 개혁의 난바다에 던져진 오늘날의 대학사회도 예외없이 벼슬 한 자리를 지상목표로 글을 읽어오던 한국적 전통이 인습으로 온존해 있는, 고인 물이란 말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대학 밖에 있는 사람들은 으레 대학 안에서 '무슨 무슨 長'의 자리에 있는 교수들을 대단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다못해 돌아가며 맡는 '학과장'이라도 돼야 힘깨나 쓰는 교수, 교수다운 교수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하기야 그 흔한 일간신문들의 인사란에는 일년내내 대학가의 인사소식으로 메워지고 있으니, 매일 신문만을 대하는 일반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필자는 아직 나이도 어리고 보직의 단물(?)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가끔 그 분들을 먼 발치에서나마 뵙는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복잡한 업무 때문에 본업인 강의 준비와 연구는 언제들 하시는지 그저 궁금할 따름이고, 그래서 그 분들이 좀 안됐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 인사철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책을 맡은 교수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내지만, 나는 그것이 축하해야 할 일인지 위로해야 할 일인지 알 수가 없어서 적당히 얼버무리고 만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보직을 맡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는 교수들이 대학가에 제법 있다는, 나로서는 믿기 어려운 말을 누구에게선가 들었다. 더구나 말로는 보직을 멀리한다고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맡고 싶어한다는 교수사회의 이중성까지 그는 덧붙이기도 했다. 그들이 내세우는 이유 중의 하나는 교수가 나이 들어 보직 한 자리 못해도 '불출'에 속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보직을 맡음으로써, 학문적으로 받는 피해를 상쇄할 만큼의 보상이 주어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숭고한 봉사정신을 구현할 수 있도록 주어지는 기회에 감읍하는 것인가. 모를 일이다.

필자가 존경하는 선학들 가운데 60을 넘긴 지금도 학문의 금자탑을 찬란하게 쌓고 계시는 분이 있다. 이 분은 젊은 시절부터 보직을 맡지 않으려 투쟁해왔고, 결국 승리하신 것으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이 분의 예만을 본다면 보직을 맡지 않는 것과 학문적 대성은 필연의 관계로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물론 필자가 대학 내에서 보직의 필요성을 부정하거나 보직교수들의 희생정신을 깎아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능력과 경륜을 갖춘 교수라면 자발적으로라도 합당한 보직을 맡아 학교발전에 공헌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교수의 본업은 학문탐구와 전수일 뿐, 극소수의 예에서 보듯이 어울리지 않는 보직을 맡아 목에 힘이나 주는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보직은 총장이나 경영자에 대한 충성의 '보상으로' 안겨주는 떡 덩어리가 아니다. '꼭 필요한 사람을, 꼭 필요한 자리에, 최단기간' 발탁해 씀으로써 교수의 본업에 큰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현명한 대학 경영자의 지혜다. 언론계나 일반인들도 이 점을 깨달아 교수의 본질과 의미를 더 이상 호도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보직 하나 맡지 못하는 필자같은 사람들을 너무 우습게 보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 이 글은 교수신문 120호(1997년 9월 15일자)의 "강단단상"에 실었던 글이다. 그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연구실을 정리하던 중 발견하여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글이 졸렬하여 '좀 창피하긴 하지만', 홈페이지에 실어 모두 함께 생각할 자료로 삼고자 한다.(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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