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불혹에 찾아온 깨달음


글쓴이: 백규

등록일: 2002-08-08 05:34
조회수: 2628
 
:: 내 인생의 책 한 권

불혹에 찾아온 깨달음


뻐얼건 황토와 파아란 초목이 어울려 빚어내는 적빈(赤貧)의 황량함 속에서 나는 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끔 비료푸대 혹은 사카린 봉지에 쓰여있는 글자들이나 보면서 그것들이 모여 이룰 수 있는 상상의 바다에서 헤엄치곤 할 뿐이었다.

언제던가. 아마 초등학교 5학년 쯤이었을 게다. 대처에서 공부하다 방학을 맞아 내려온 장형의 가방 속에서 '도무지 재미없고 알기 힘든' 책 한 권과 처음으로 조우하게 되었다. 조잡한 교과서에 물려있던 나로서는 그 책이 신기하여 밤 늦게까지 내처 반나마 읽었다. 물론 내용은 모조리 까먹고 말았지만.

그 후 대처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나는 학교 도서실의 서가 한 켠에서 보얗게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널부러져 있는 책 한 권을 보게 되었다. 한참 읽다보니 어디서 읽은 기억이 어슴푸레 살아나는 것이었다. 바로 그 책이었다. 당시 웬만한 애들치고 무협지나 '꿀단지' 류의 외설스런 이야기책 한 권쯤 책가방 속에 숨겨가지고 다니지 않으면 간첩으로 몰리던 시절, 나는 당당하게(?) 그런 책들을 외면할 수 있었다. 나는 시험공부하는 틈틈이 그 책과 함께 주변의 유사한 책들도 더러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가난한 사춘기 소년은 '연한 배맛'같은 서정시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이 책의 깊은 뜻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고뇌에 빠져 허우적대던 대학시절, 나는 비로소 이 책의 깊은 뜻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세상과 현존을 사랑하되 탐착을 버리자"는 내 나름의 좌우명을 제법 굳히게까지 되었다. 어떤 성인의 초기 생애를 그린 이 작품이 그의 이름을 제목으로 달고 있긴 했으나, 읽어보니 적어도 특정 종교의 도그마를 강요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인간 내면의 진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만약 탐착을 버리고 우주와 자연에 순응하며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결국 육신과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주인공은 바로 오늘을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너와 내가 아니던가. 그 책의 메시지는 대략 이런 것들이었다.

작가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나는 우리나라에 알려진 그의 작품들도 거의 대부분 맛을 보게 되었다. 모두 기가 막히게 좋았다. 내친 김에 작가의 이력까지 뒤져보곤, 그가 바로 동양정신에 매료되어 있던 서양인이었음을 알았다. 동양에 선교사로 와 있던 아버지 덕분이었을까? 그는 동양을 여행했고, 동양정신에 흠뻑 빠져들 수 있었다. 물론 서양의 식민지배에 허덕이고 있던 동양에 실망은 했지만, 어쨌든 동양인보다 오히려 더욱 근본적인 동양정신에 물들어 있었음은 이 책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불혹의 중반에 들어서 있다. 이 책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깨달은 대학시절로부터 무려 20여년이나 지난 지점에 서서 가래침 뱉듯 몹쓸 시절에 대해 불평이나 마구 토해내는 얼간이일 뿐이다. 한 순간도 내 마음속을, 나의 내면적 본질을 관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인상되는 월급 한두푼에 희희낙락하고 가증스러운 이기주의의 흙탕물 속에서 허위적대고 있을 뿐이다.

사랑하는 벗들이여! 단 한 순간만이라도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자. 그리고 탐착과 이기의 늪에서 벗어나 보자. 그러기 위해서라도 오늘 조용히 발을 씻고 책상 앞에 앉아 헤르만 헷세의 [싯다르타]를 읽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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