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말싸움에 몰두하는 정치인들


글쓴이: * http://kicho.pe.kr

등록일: 2005-02-18 09:55
조회수: 2502
 
말싸움에 몰두하는 정치인들

며칠 사이에 대통령의 사부라고 불리는 사람이 다른 당 대변인의 글을 꼬투리 잡아 일격을 날렸고, 대변인 또한 질세라 맞주먹을 날렸다.

입이 뚫렸으니 말은 자유라지만, 남의 집안일에 참견을 한 격이니 단순히 꼬투리 잡기를 넘어, 작심하고 시작한 ‘싸움걸기’이었으리라. 다시 말로 꾸려가는 정치의 계절이 열린 게 분명하다. ‘못 살겠다’는 서민들의 아우성에 잠시 잦아들었던 객기들이 되살아난 걸까. 봄을 맞아 땅 속의 개구리들이 기지개를 켜듯 다시 정치판의 꾼들은 겨울잠을 깨고 있는 것이다.

가관인 것은 그들이 사용한 중층의 수사법이다. 최근 우리는 문학교수들만 사용하는 줄 알았던 고도의(?) 수사법을 정치인들에게서 듣는 호사를 누린 셈이다. 그런데 점잔과 거드름의 꺼풀을 살짝 벗겨내니 날카로운 칼날이 눈을 시리게 한다. 칼날의 섬뜩함을 훔쳐본 독자들은 그 점잖음이 지독한 시니시즘의 위장막이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출범 당시부터 참여정부의 전매특허처럼 되어온 말, 아직도 그 말의 효용가치는 남아 있었던 것이다. 철학자 하이덱거Martin Heidegger는 사유의 산물인 말을 통해 본질과 관계를 맺는 것이 인간의 존재라고 했다. 이처럼 본질은 말이라는 그릇에 담겨 인간에게 전해질 뿐 말이 본질 그 자체는 아니다.

작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맞붙은 양측이 재미를 본 전략의 하나가 ‘상대방 말꼬리 붙잡고 늘어지기’였다. 그 과정에서 수시로 상대방 말의 맥락[context]을 왜곡하여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었고, 그 결과 말에 대한 불신이 선거 후유증들 가운데 하나로 부각되었음은 물론이다. 두 사람이 과연 말싸움 때문에 지고 이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양측 모두 말 때문에 입은 무형의 피해는 적지 않을 것이다.

지금 말로 치고받는 싸움판을 국민들은 구경꾼이나 심판이 되어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문제는 그런 말싸움이 그들로서는 살아남기 위한 투쟁일지 모르나 구경하는 국민들에겐 ‘심심풀이 땅콩’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는 점이다. ‘상대방의 도덕성이나 양식에 흠집을 내서 국민들의 지지를 잃게 하겠다’는 것이 저급한 싸움의 의도일 것이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미 양측에 점수를 매겨버린 상태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배설해내는’ 말을 근거로 국민들이 그들에 대한 생각을 바꿀 만큼 어리숙하지 않다는 사실을 그들만 모르고 있는 것도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그런 무지와 착각이 ‘무성한 말의 향연’으로 나타나고, 그것이 나라의 정치판을 혼탁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말들이 난무하고 소통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도 진정한 소통은 불가능한 것이 현대다. 그래서 현대를 소외의 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서로간에 의사가 소통되지 못하는 이유는 말을 싸움의 도구로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는 성서의 ‘말’은 신과 같은 의미다. 즉 말은 본질 그 자체이지, 함부로 휘둘러도 되는 ‘헌 칼’이 아니다. 예로부터 우리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하여 말을 사람이 갖추어야 할 네 가지 조건들 중 두 번째로 꼽았다. 그러나 그 때의 말은 세상을 이롭게 하는 말이어야 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단 하나의 요소는 진실이다.

상대방의 심성을 자극하여 강퍅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을 해치는 말이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고 몸을 망칠 수도 있음’을 정치인들만 모르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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