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집중포화 맞은 `내재적 발전론`


글쓴이: 김영덕

등록일: 2002-07-23 16:44
조회수: 3624
 
집중포화 맞은 '내재적 발전론'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지난 20일 오후 2시 서울 연세대 100주년기념관에서는 '조선후기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1)'를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다.

    한국역사연구회(회장 이영학 한국외대 교수)가 주최한 이 행사는 '소농(小農)사회론을 중심으로'라는 소주제로 보나, 발표자 및 4명의 토론자 면면으로 보나  한국 근현대사를 판이하게 바라보는 두 흐름, 소위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이 정면으로 마주친 자리였다.

    양 진영을 대표하는 발제자로 '식민지 근대화론'에서는 경제사  전공인  이영훈 성균관대 교수가 나섰고, '내재적 발전론'측에서는 그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연세대 사학과 출신 최윤오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가 '총대'를 멨다.

    '내재적 발전론'이란 한국은 스스로가 자본주의(근대화)로 발전하기 위한  싹을 '내재적'으로 틔우고 있었는데(이런 관점은 '자본주의 맹아론'과 연결된다) 그만 외세의 침략에 꺾여버리고 식민지 전락 및 분단이 초래됐다는 것이다.

    반면 '식민지 근대화론'은 한국사회가 근대화되는 데 일본의 식민통치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주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누구도 드러내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날 발표회는 '내재적 발전론'이 '식민지 근대화론'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 이 교수를 '불러낸' 자리였다.

    내재적 발전론자인 왕현종 연세대 교수는 이영훈 교수 발표에 대한  토론문에서 '이 논문을 받아들고 단숨에 읽고난 후 과연 이 논문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간단히 표현하면 '착잡하다, 안타깝다, 실망했다'는 세 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6시 30분까지 계속된 토론회에서 결국 집중포화를 얻어  맞은 쪽은 '식민지 근대화론'이 아니라 '내재적 발전론'이었다.

    이영훈 교수는 '내재적 발전론'의 주요 근거가 되고 있는 부농(富農)과 그에 대비되는 노동자적 빈농의 동시 출현에 대해 '경작 규모는 (부농과 빈농으로)  양극화되기는커녕 오히려 하향평준화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다시 말해 한국사회는 18세기 이래 1950년대까지 줄곧 소농(小農)사회였으며 자본주의의 출현을 예고할만한 부농이나 빈농은 출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소농사회론'과 관련, 한국사회의 가족형태를 주목했다.  소농사회에서 한국은 아버지가 직계상속자 부부와 함께 거주하는 '직계가족'이었으며, 그 이전(18세기 이전) 1천년 가량 계속된 공동체적 가족과는 뚜렷이 구분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러한 소농사회적 특성이 외부에서 유입된 서구식 자본주의가  유입됐을 때 어떻게 결합하며, 그러한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소농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우수한 상속자를 확보하기  위한 아버지의 자식교육에 대한 맹렬한 욕구가 분출됨으로써 대중의 지적 능력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게 되는데 한국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특히 3.1운동 이후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는 한국의 폭발적인  자식교육열을  이 교수는 한국사회의 '소농사회'적인 특성에서 찾고 있다.

    이 교수는 내재적 발전론을 겨냥해 '많은 역사학자들이 대한제국 멸망과 식민지 몰락, 해방과 뒤이은 남북분단의 지난 세기를 실패의 역사로 단정했다'면서 '이  실패의 역사에서 주역을 담당했거나 조연으로 동참한 사람들은 악으로 규정되며  반면 그에 저항했거나 불참한 사람들은 역사의 선으로 찬양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우리 민족이 겪은 식민 치욕의 역사는 조선왕조의  위정자와 지식인들이 공리주의적 선택에서 실패한 결과이지, 일본이 강포한 악의 세력이기 때문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사실 '소농사회론'을 핵심으로 설정한 '이영훈 사학'이 과연 단순히  '식민통치 덕택에 한국사회가 근대화되었다'는 식의 '식민지 근대화론'인가 하는 점은 이제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지정토론이 끝난 뒤 자유토론은 '내재적 발전론' 진영에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임지현 한양대 교수는 내재적 발전론이 유럽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낸 유럽 중심주의 역사관이라고 비판했으며, 도쿄대에서 최근 성균관대로 자리를 옮긴  미야지마 히로시(宮島博史) 교수는 이영훈 교수와 몇 군데서 견해차를 보이기는 했으나 '조선에는 토지귀족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는 말로 소농사회론을 피력했다.

    이어 일본 근현대사가인 박환무 서강대 강사는 '내재적  발전론은  1920-30년대 일본에서 유럽을 겨냥해 개발해 낸 내재적 발전론에서 용어나 개념을 고스란히 옮긴 '황국사관'과 다름없다'는 폭탄성 선언을 했다.

    그는 또 '한국에서 내재적 발전론이 등장한 때가 하필 왜 '국민교육 헌장'이 등장한 박정희 시대와 일치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박씨는 이 교수의 소농사회론에 대해 '문명론으로서의 거대담론을 제시한  점은 획기적'이라고 평가하면서 '다만 근대화의 '빛'에만 치중하는 바람에 그  '그림자', 예컨대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한 한국사회의 패거리 문화라든가, 저신뢰사회  형성과 같은 문제점이 외면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 사진 있음 >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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