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전쟁이 만든 학회들


글쓴이: 김영덕

등록일: 2002-08-09 12:35
조회수: 2511
 
전쟁이 만든 학회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국내 역사학과 국어국문학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학회들인 역사학회와 국어국문학회가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또 국내 영어영문학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는 한국영어영문학회도 올해 창립 48주년을 맞았다.

    50년을 거슬러올라가면 1952년이 된다. 48년 전이라면 1954년이다.

    역사학회와 국어국문학회가 창설될 무렵 한반도는 전쟁중이었다. 더구나 이즈음 국군과 미군이 주도하는 유엔군은 서울을 상실하고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내려가  있었으며 부산에 임시수도가 있었다.

    한국영어영문학회가 출범한 1954년은 지리한 전쟁이 중지된 직후였다.

    이런 전쟁통에, 혹은 전후의 대혼란기에 현재 한국 인문학을 대표한다는 학회들이 나란히 출범했다는 사실이 언뜻 믿기지 않는다.

    학회를 움직이려면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자가 있어야 하고, 그들의  연구성과를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인 학회지가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재정적 뒷받침, 쉽게 말해 돈과 물자가 있어야 한다.

    반세기 전과 비교해 경제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진 요즘에도 학회 하나 결성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은 판국에, 역사학자들과 국어국문학자들,  영어영문학자들은 도대체 어떤 저력이 있었기에 학회를 출범시킬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연구자들의 열의를 꼽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열성이  없었으면  학회 출범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열의만으로는 부족하다. 또 회원 대부분이 학회 운영을 위한 자금을  갹출했다고 하지만, 턱없이 부족했음이 여러 증언에서 확인된다.

    이와 관련해 이들 학회 창립에 관여한 인사들이 남긴 증언이나  회고담을  보면 아주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미국의 지원을 받았음이 공통적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일부 학회는 한국 국방부의 측면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역사학회의 경우 1952년 3월 1일 부산으로 내려간 서울대 문리대 임시 건물에서 발기인 총회를 가졌는데 주한 미국공보원에서 학회지 「역사학보」 발간을 위한  지원을 얻었으며 한국 국방부도 관여를 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 1952년에 나온 「역사학보」 창간호에 미공보원으로부터 지원받은 사실을 명기하고 있는 점이다. 역사학회는 창립 몇 년 뒤에는 미국  재단인 '자유 아시아'(Free Asia)에서도 학회지 발간을 위한 종이를 지원받았으며 1958년부터는 하바드대학 옌칭연구소에서도 재정지원을 받기 시작한다.

    '자유 아시아'는 미국 정보기관이 지원하는 재단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역사학회 창립에 한국 국방부도 어느 정도 개입했음이 학회 창립에 관여한 인사들의 증언으로 여러 곳에서 확인되는데, 그 연결고리는 학회 창설을 주도한 몇몇 역사학자가 당시 국방부 전사편찬실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전쟁과 미국 및 한국 국방부를 역사학회의 태동 요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할 수 있는데 이는 역사학회 창립 발기 취지문에서 잘 드러난다.

    이 취지문은 '젊은 사학도의 총력을 응집하여 역사학회(가칭)를 조직하려고  합니다'라고 선언하면서 '조국이 전화(戰火)에 휩쓸려 지대(至大)의 환난 가운데 있는 오늘날 앞날의 한국을 위한 역사학의 재건이야말로 당면 초미의 과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그 목표점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언급으로 보아 역사학회는 '조국을 위한 역사' '국민총화  단결을  위한 역사' '국난을 이기기 위한 역사'를 표방했음을 알 수 있다.

    역사학회와 같은 1952년 임시수도 부산에서 결성된 국어국문학회  또한  미국의 지원을 발판으로 학회지 「국어국문학」을 발간했음이 확인된다.

    학회 창설에 관여했던 한 원로 국어국문학자는 최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미국의 '자유 아시아' 재단에서 지원을 받아 한동안 학회지를 냈다'면서 '지원품은 돈이 아니라 종이였는데, 마카오에서 수입된 갱지였다'고 증언했다.

    이들 두 학회보다 2년 뒤에 출범한 한국영어영문학회는 그 특성상 미국과  연결될 소지가 더욱 컸다.

    오늘날 한국 인문학을 대표하는 이들 학회가 태동하고 활동을 전개하는 데 있어 이처럼 미국의 지원이 절대적이었다는 사실은 국내 지식인 사회에서 이른바 친미파(親美派)가 형성돼 가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방부가 개입한 역사학의 경우 '인간을 위한 역사'가 아니라  '조국과  전쟁을 위한 역사'를 표방하고, 또 그에 따라 학문 자체가 국가권력에 급격히 포섭됨으로써 '어용 학문'으로 스스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비판에서 썩 자유롭지는 못할 듯하다.

    한편 창립 50주년을 맞아 국어국문학회는 최근 기념학술대회를 가진 데 이어 이달 중으로 학회 50년사를 단행본으로 낼 예정이며, 역사학회는 미국에 본부를 둔 세계사학회와 공동으로 오는 15-18일 서울대에서 기념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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