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조의제문`(김종직)


글쓴이: 김세군

등록일: 2002-09-15 10:54
조회수: 2672
 
김종직(金宗直)과 조의제문(弔義帝文)

  정축년 10월 어느 날 내가 밀성(密城; 현 密陽)으로부터 경산(京山; 현 星州)에 가는 길에 답계역(踏溪驛)에서 자게 되었는데 꿈에 어떤 신인(神人)이 칠장복(七章服)을 입고 훤칠한 모습으로 와서 말하기를

  "나는 초회왕(楚懷王)의 손자 심(心)인데 서초패왕(西楚覇王) 항우의 손에 시해되어 침강(침江)에 던져진 사람이다."

라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꿈에서 깨어 놀라 생각해보니

  '회왕은 남방 초나라 사람이고 나는 동이(東夷)의 사람이다. 땅이 서로 만리나 떨어져 있고 시대가 또한 천여 년이나 떨어져 있는데 내 꿈에 나타나는 것은 무슨 징조일까. 또 역사를 상고해 봐도 강물에 던져졌다는 말은 없는데 혹시 황우가 사람을 시켜 몰래 시해하여 시체를 물 속에 던진 것인지 이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다'

하고 마침내 글을 지어 그를 슬퍼하였다.



하늘이 만물의 법칙을 마련하여 주셨으니
누가 사대와 오상을 높일 줄 모르리
중국이라 넉넉하고 동이족이라 모자란 것 아니거늘
어찌 옛날에만 있었고 지금은 없겠는가
그러기에 나는 동이족으로 천년뒤에 태어나서
삼가 초나라 희왕께 조문을 드리네
옛날 진시황이 병사를 몰아서
사해의 물결이 핏빛으로 변했네
비록 보잘 것 없는 생명체라도 살아날 수 있을까
그물을 벗어나기 급급했도다.
당시 여섯 나라의 후손들은
숨고 도망가서 겨우 평민들과 짝이 되었네
항량은 남쪽 나라의 장종으로
진승과 오광을 뒤따라 일어났다네
왕위를 얻고 백성들의 소망을 따르려 함이여
끊어졌던 웅역의 제사를 보존했네
천자가 될 상서를 잡고 임금자리에 오름이여
이 세상에는 미씨보다 존귀한 이 없었다네
장자를 보내어 광중에 들어가게 함이여
인의의 마음을 알고도 남는다네
흉악한 무리들이 관군을 마음대로 죽임이여
어찌 잡아다가 제부에 기름칠 아니했는고
아! 형세가 그렇지 못함이여
내가 왕을 생각하니 더욱 두렵네
도리어 시해를 당했으니
정말로 천운이 어긋난 것이네
침산이 우뚝하여 하늘을 찌를 듯
해는 니웃니웃 저물어 가는데
침의 강물이 밤낮으로 흘러 흘러
넘실 거리는 물결은 돌아 올 줄 모르네
이 천지가 다하도록 그 원한 다할까
넋은 지금도 구천을 맴도시는데
내 마음 금석을 꿰뚫음이여
임금께서 갑자기 꿈속에 나타나셨네
주자의 사필을 본받아
설레는 마음으로 경건히 사뢰며
술잔을 들어 강신제를 드리나니
영혼이시여 흠향하시옵소서


<점필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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