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허구와 현실을 담는 ‘미디어’


글쓴이: 김영덕

등록일: 2002-10-16 00:42
조회수: 2299
 
허구와 현실을 담는 ‘미디어’를 진단한다

◇화제의 심포지엄, ‘미디어-시티 서울 2002’ 학술심포지엄


지난 28일 세계적인 석학, 쟝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아시아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다는 이유로 국내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미디어-시티 서울 2002' 학술심포지엄. 이날 심포지엄은 750석 규모의 이화여대 법정대 강당이 가득 메워지는 것으로, 그 열기를 실감케 했다.


심포지엄은 달과 미디어의 관계를 설명한 존 웰쉬만(John C. Welchman)의 발제문 을 시작으로, 컴퓨터 문화에 있어서 악마적인 영향을 다룬 로렌스 리클스(Laurence A. Rickels)의 논문 <사탄과 골렘>이 발표됐으며, 켄 훼인골드(Ken Feingold)와 코디 최(Cody Choi)의 작품 세계를 해석해 보는 순서로 이어졌다. 이날 심포지엄의 메인 주제를 발표한 장 보드리야르는 그의 논문 <이미지의 폭력>을 통해 이미지로 가득 찬 세계에서 깊이가 상실되었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과학기술의 진보에 의해 야기된 이미지의 폭력성을 강연해 청중을 사로잡았다.


- 이미지는 바이러스와 같다
지난 28일 이화여대 법정대 강당엣 여린 '미디어-시티 서울2002' 학술심포지엄 중 <이미지의 폭력>을 강연하고 있는 쟝 보드리야르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 금발의 젊은 여인이 끊임없이 말하면서, 태연하게 오줌을 누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요?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에 무심한 그녀를 볼 수 있을까요? 천만에요. 완벽하게 소용없는 장면일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이 노골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볼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대상을 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용도 없이, 필연성 없이, 욕망 없이, 효과 없이 보여지는 외설인 셈이죠.”


이날 강연의 백미를 장식했던 쟝 보드리야르의 말이다. <이미지의 폭력>(부제: 이미지에 가해진 폭력, 이미지 왜곡)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던 보드리야르는 특히 `이미지가 갖는 잠재된 폭력성'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강연에서 “폭력의 일차적인 형태인 공격, 억압, 강간은 시작과 끝이 있는 폭력이지만 만류, 중재, 통제처럼 소리없는 말살도 폭력이다”라고 말하며 “정보, 미디어, 이미지 등이 이에 속하는데, 특히 이 모든 것들은 `이미지'가 발달해 가면서 더 위험한 폭력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이미지의 폭력은 전염, 연쇄반응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는데.


이를테면 바이러스와 유사하게 우리 일상 속에 스며드는 `이미지'는 실재를 사라지도록 하고 모든 것을 가시적인 형태로 남기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것은 남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주장이다.


“LOFT(프랑스의 TV 프로그램으로 6명의 남녀가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프로)는 유원지, 강제 수용소 게토, 폐쇄된 방 등을 요약하는 보편적 컨셉이 됐습니다. 자의적인 은둔, 내적인 몰입을 의미하죠. 실험적입니다. 그런데 이런 프로그램은 허구도 현실도 아니라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어요. `가상적인 이중성'은 실험적인 특징을 지니면서 `실험'이 `실험'으로 끝맺을 것 같지만, 결국 이를 바라보는 우리 모두까지도 실험적인 상황에 놓일 수 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는 이미지가 거꾸로 현실을 지배하고 극단적으로는 하이퍼리얼리티(초현실)가 되어버리는 현상을 위험하게 내다본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중 한 사람이다. 그는 `사물의 체계'와 `소비의 사회' 등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의 초기 저작을 통해 현대 사회의 상품가치를 기능적 효율성이 아니라 지위와 권력을 상징하는 소비기호로 규정함으로써 일약 주목받는 학자로 떠올랐다. 특히 1980년에 발표한 `시뮬라르크와 시뮬라시옹'에서 현대사회의 특징을 원본 없는 복제로 설명한 그의 이론은 철학과 사회학뿐 아니라 미디어와 예술 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 미디어를 달에 비유하다


한편, 쟝 보드리야르가 직접 방한하면서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는 `미디어 시티 서울 2002' 행사는 다음 달 24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과 정동길, 덕수궁 돌담길 등에서 열린다.


지난 2000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달빛 흐름(Luna Flow)이란 주제로, 미디어를 달에 비유해 미디어와 테크놀로지를 정복의 수단이 아닌 인류가 잊고 있던 낭만을 회복시키는 도구로 설정하고 있다. 행사는 미술관에서 열리는 본전시와 정동 일대를 주무대로 한 야외전시로 나누어진다.


본전시는 ▲디지털 서브라임 ▲사이버 마인드 ▲루나즈 칠드런 ▲루나 노바 등 4개의 전시로 구성된다. 이 주제들은 다시 미술관 외관 전면 유리창을 채운 `눈', 미술관 내 전시 도입부를 덮은 `피부'와 `두뇌', `심장', `골격'으로 꾸며, 미술관 전체를 살아 있는 생명체로 탈바꿈하고 있다.


참여작가는 해외작가 42명과 국내작가 37명, 특별전시 웹작가 50명 등 총 130여 명으로, 젊은 작가들의 참여 기회가 확대된 것도 특징이다.


행사의 총감독을 맡은 이원일 씨는 “이제 미디어는 우리 곁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일상이 돼 버렸지만, 이를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또한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며 “이번 행사는 미디어에 관한 여러 면모들을 살펴보면서, 미디어의 원래 기능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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