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義州大路`답사에 대한 짧은 後記 !


글쓴이: cameducer

등록일: 2003-08-26 13:35
조회수: 2993
 
이렇게 또 답사가 끝났습니다.
간단한 cameducer(天長地久)의 답사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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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예상치 않았던 경기북부지역에 대한 집중호우로 답사진행에 대한 可否를 결정해야 할 정도로 고민스런시간이 없지 않았지만,
'답사강행 결정'이후 오히려 홀가분 해 지더니......

전날 대학동기 부친상의 조문으로 늦게 귀가 한 터라 아침에 일어나는 '발버둥'이란.......미치는줄 알았다.ㅎㅎ

일찍부터 준비해서 나올 다른분들 생각에 벌떡 일어났다.ㅋㅋ

경복궁을 기점으로 육조거리인 광화문통-서대문(돈의문자리)-경교장-경기감영 터-모화관 터-영은문-독립문-무악재-홍제원터-홍제천(모래내)-박석고개-구파발-창릉천....
끊임없이 내리는 빗줄기도 의주대로 답사단의 열정앞에는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창릉천에서 바라다 본 삼각산(북한산)....
옛 사신들의 싯귀 한 구절을 답사자료에서 훑어본 후 ..그의 감정으로 바라다 본 삼각산은 안개구름,비에 가려 아쉬움을 더하였다.

비석모루-숫돌고개-신원역참터-덕명교 비석(기업은행 고양수련원內)-세원마을.....
망객현까지의 도보답사를 기획했으나 우천으로 무산되는 아픔을 대신하기 위하여 전화를 걸었는데...
세원마을의 이기철(50대,주민)氏를 모시고 차 안에서 열린 '사행관련 증언'들은 답사의 내용을 좀 더 풍성하게 해주는 의미 이상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이성훈님(혜광)의 채록이나, 다른 분 들의 경청, 관심은 참 인상적이었다고 하겠다.

세원마을에서 버스를 우회시키고 결국은 걸어서 올라간 망객현!
굵은 빗방울을 맞으며 다가선 망객현 고갯길은 굳게 빗장을 걸어 잠그고 답사단을 가로막고 있었다.
여전히 군부대의 굳게 닫힌 문과 초소안의 초병은 그렇게 서 있었다.

(벽제화장터에서 발인을 마치는 동기생의 모습이 보일까하여 전화를 하고 둘러보았으나 폭우때문인지, 끝났는지.... )

망객현을 지나 고양구읍을 향하였다.
고양향교의 규모나 보존상태에서 옛 읍의 勢를 미루어 짐작하게되고
벽제관지에서는 또다른 옛 사정들을 더듬어 보게 되었다.
국가기관급의 여관의 임무외에도 전란시의 요지이자 중요한 사행공간이었던 벽제관지의 복원을 희망하는 것은 답사하는 이로서의 바램이기에 앞서 역사의 한 장면으로서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혜음령고개를 넘어간다.
사신들의 혜음령에 대한 기록을 체험하고자 도보이동을 계획했었던 것도 역시나 우천으로 인하여 빠르게 이동하는 차 안에서 추체험 할 수 밖에 없었다.

세류마을, 윤관로, 신탄막이 있었다던 신산3리를 손살같이 달린 답사차량은 광탄교아래에서 뭠췄다.

옛 사행로정, 대동지지등 문헌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광탄교'는 현대식 개량橋였지만, 한강으로 흘러나가는 광탄천은 유구한 역사속에서도 유유히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옛모습과 흡사하게!

파주구읍으로 향하는 차 안!
답사1호차량(진행본부?)에서 미리준비한 김밥과 만두가 아니었으면 답사중에 느낀 허기를 감당키 어렸웠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더니...열심히들 먹는 모습에 서로들 좋아하는것 같아 보인다.

답사차량은 현대 기지촌으로도 알려져 있는 용주골일대를 지나....파주구읍에 당도하였다.
한 때 경기북부의 가장 큰 도시형태를 지닌 파주목은 이제 작은 소도의 기능밖에 없으며, 파주발전의 거점은 '금촌'지역으로 이동하였으니...또다른 역사의 시작이 아니겠는가..생각하게 된다.

파주목의 관아터가 자리했다는 '파주초등학교'를 찾았다.
그러나 파주목의 자리였다는 옛 위세는 간데없고 휑한 느낌에 아쉬움과 실망스러움을 느낄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정문우측 답장아래로 아이들이 뛰어놀며 쉴수있는 벤취옆에 작은 주춧동 3개만이 박혀있으니....답답하고....아쉬운 마음은 볼 때마다 더해간다.

사전답사에서도 느꼈던바이지만 다시한번 역사적 흔적에 대한 고증과 보존은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결코 작다고 할수 없는 역사적의미를 지닌 파주목 관아 터에서의 짧은 생각이다. 역사를 되짚어가는 답사자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초등학교옆의 군부대를 거쳐올라가면 '파주향교'가 자리하고 있고
향교뒤편의 봉서산은 옛 선인들의 싯 귀에서 등장하는 위용으로 우뚝 서 있었다.
구름이 8부능선쯤에 걸린 모습이 답사하는 눈으로 바라다보니 문득 참으로 옛스럽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봉서산을 끼고 '성황당치'를 넘어간다.
그러나 옛 성황당은 흔적이 없고 단지 군부대의 담벽과 낙석(남침하는 적군의 탱크를 저지하기위해 설치한 군부대의 곤트리트 석축물을 뜻함)만이 이곳으로부터 점점 더 군사지역임을 실나게 해 줄 뿐이다.

답사차량은 곧장 내달려 배내가 흐르는 梨川마을로 향한다.
옛 사행길은 이 부근에서 미군부대에 가로막히게 되니.. 답사단은 우회하여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우리 땅을 맘대로 갈 수 없는 안타까움이 분단상황 속에서 만들어낸 결과물이긴 한다지만 남한내의 우리 땅 마저도 미군의 캠프를 경유해야(결국 들어갈 수 없는...)하는 현실앞에 작은 슬픔을 느낀다.
언젠가는 우리땅을 밟아가며 북한지역의 사행길(의주대로)까지 답사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어보자.
캠프앞에서 바라다 본 배내는 계속내린 비 때문인지 제법많은 물이 넘쳐있었다.

배내를지나 화석정으로 향하는 답사차량...
답사구간의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생각과 임진나루를 본다는 생각에 모두들 눈가에 총기가 흐른다.

화석정에서 내려다 본 임진강은 밤새...오전중에...계속된 호우로 이미 엄청나게 불어있었고 사전답사때와는 좀 더 다른 느낌으로 다가 온다.
마음속으론 '장관'이라는 표현을...
겉으론 '......' 묵묵부답이랄까.

화석정에서 답사단 단체사진으로 기념을 삼는동안 제1사단 정훈장교의 전화가 울렸다.

"임진강수위가 높아져서 임진나루 답사가 불가능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1~2시간후면 남아있는 초소장병이 철수하게 되니(이미 대부분은 철수한상태...)빨리 답사여부를 결정하시고......"

급한대로 임진나루의 답사만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달려간 임진나루!

이미 선착장(나루)은 물에 잠겼고... 철책너머까지 잠겨버렸다.
사단 정훈장교의 안내로 흙탕물에 잠긴 임진나루를 바라다보자니 온갖 생각들이 다 들었다.

옛 사신들이 임진강을 여기서 건넜다지?
임란시 선조임금이 이곳을 통해 피난길에 올랐다지?....라는 생각들은 전혀 할 수 가 없었고, 폭우로 인하여 임진강이 범람 직전에까지 이르렀음을 목도하는 순간 自然에 대한 경외감과 인간의 나약함을 느끼는 것 외에는........

급한대로 '임진나루'의 부근과 반대편에서 잠길듯 말듯한 '동파나루'방면에 카메라의 시선을 고정시켜 놓았다.
군사시설에 대한 촬영은 금물인지라 선별된 공간만의 촬영이 답답하기도 했고...
임진나루 선단장님의 고깃배정박장업은 참으로 버거워보였다.
아직도 생업으로 임진강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어선(작은 고깃배)이 예닐곱척이 있는데, 선단장님은 아침부터 나와 정박 작업중이시란다.

얼마간의 임진강수위에 넋을 놓다가 이성훈선생님의 '강', '물'의 의미...연행관련 얘기들로 임진나루강의가 시작되었고...
발아래로 넘쳐대는 물길이 눈으로 확인되는 순간 임진나루 답사를 마칠수밖에 없었다.

정훈장교에게 답사협조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고 초소에 라면 2박스를 전달하고 돌아왔다.
위문품이라기엔 부끄럽고 형편없는 답사팀의 마음만 전하고 왔다.

임진강반대편의 동파리일대와 동파나루답사는 위험수위 임박과 교량(전진교)의 안전문제로 답사계획대로 진행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채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진행자입장에서 이런 순간이 가장 아쓉고 답사단원들에게 미안할뿐이다.

돌아오는 길!
1시20분, 점심도 거른채 진행된 답사단의 마지막여정은 서대문일대의 영은문, 모화관지 답사!
배고픔과 편치않은 답사환경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답사마무리후 점심식사-뒷풀이"를 동의해 준 답사단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먹어야하는 기쁨을 제한하고 있으니....

자유로를 타고 귀경길에 오른 답사단은 로변의 철책선과 불어나는 임진강의 수위를 걱정하며 서울로 향하였다.

성산대로를 지나 서대문에서의 독립관, 독립문, 영은문, 모화관지....답사를 마지막으로 '의주대로 답사'는 이렇게 끝이 났다.

24일 일요일 15시경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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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10분경....
대학로 방송대학교앞!

답사단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둘둘호프....에서 2차의 자리를 가졌다.
조규익교수님께서는 걱정이 되셨는지...또 전화를 주시고 격려를 하신다.

답사에 대한 얘기로 아쉬움이 간간이 나올 즈음에 파한 술자리는 이성훈선생님의 제안으로 몇몇의 인원이 참여한 3차가 이어졌다.

이성훈선생님과 함게한 3차역시...의주대로 답사와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만발!

저녁 8시경, 비오는대학로에서 해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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