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화석정을 불사른 이는 백사 이항복....


글쓴이: cameducer

등록일: 2003-07-22 14:37
조회수: 3411
 
임진강으로 개칭된 유래

: 우리나라 한반도 허리를 동서로 가로질러 함경도 마식령 발상 안변과 삭영, 만전땅을 거쳐 흐르는 임진강은 연천과 동두천 포천에 모인 물은 한탄강이 되고 도간포에서 합류 교하 삼도품에서 한강과 합류 조강이 되어 서해바다로 이은 강물줄기는 약 700리(274km)에 달한 기나긴 젖줄이라 하겠다.

이러한 가운데 고구려때 당군(唐軍) 주둔 당시 표로하(瓢蘆河)로 호칭되었으나 고려말 공양왕이 왕조신주(王朝神主)를 돌배에 모시고 도망갈 당시 도감포 아래 연못에 수장되었다 하여 구연강(仇淵江) 또는 신지강(神智江) 낙하(洛河)등으로 개칭되었다.
이 江은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 25년(1592) 4월 13일 왜군 가등청정(加藤淸正) 총독이 이끄는 40만 대군이 부산을 상륙 3파로 나누어 한양으로 상경하는 주력부대와 충주에서 방어하던 신립(申砬)장군과 격전 끝에 패전을 거듭하게 되자 신립이 전사하였다는 비보를 들은 선조대왕은 조정중신들과 공론 끝에 의주로 파천하기로 하고 29일 오후 불야살야 호종원을 데리고 한양을 출발한다.

고양 벽제관에서 유숙 4월30일 아침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행군 혜음령을 지나 분수원 신탄막(新炭幕)에 이르러 이엉으로 지붕을 둘러싸인 천막을 설치 새로 만든 탄불에 비맞은 옷을 말리며 점심을 한 후 출발 파주목관사에서 저녁을 먹고 나니 전령이 급히 달려와 한양이 함락되었다는 통보를 받는다.

어가행군 일행은임진강을 밤중이라도 건너야하겠다는 각오로 비가 오는 가운데 동파나루에 당도하니 깜깜한 그믐날밤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풍우속에 건너갈 길이 막연하여 호종하던 중신들이 수시간에 걸쳐 공론이 분분한 가운데 밤 12시에 이르러 율곡선생이 화석정에서 옛날 제자들을 지도할 당시 밀 한쪽씩을 가져오라 하여 화석정 도리, 기둥, 석가래, 마루에 기름칠을 했다는 말을 들은 백사 이항복이 강변에 있는 화석정에 불을 사른다.

화광이 충천한 가운데 폭풍우에 불어나는 홍수, 나룻배는 뒤집 힐듯하면서 간신히 어가행군 일행이 강을 건너 한숨을 쉬며 하늘을 우러러 통곡 동파역에 이르러 밤을 세우고 송도에 당도 명나라 구원병을 요청하는 사신을 보내면서 평양을 거쳐 의주로 파천하게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왜군은 5월 5일 신지강에 당도 아군과 17일간에 걸쳐 격전하였으나 유극량 장군과 수어사 신길(申 )이 전사하니 삽시간에 왜군들은 신지강을 도강 송도 평양성에 진주하였다.

선조 26년 3월 명장 이여송이 4만의 군사를 이끌고 들어와 아군과 합세 평양성을 탈환 임진강변에 진을 구축 방어하는 동안 이순신장군이 일본수군을 격파하는 한편 권율장군이 행주산성에서 대승을 거두게 된다.

왜군 잔여병들은 할 수 없이 한양을 버리고 부산으로 퇴하니 선조 27년(1593) 10월 선조대왕은 환도할 때 이 강에 당도하여 국가민족을 위하여 순국한 장병들의 영혼의 넋을 달래고자 나루터 강변 모래사장에 제물을 차려놓고 놓고 위령제를 지낸다.

선조대왕께서는 통곡하며 그래도 하느님의 도움을 받아 (天佑神助)이 나루를 다시 돌아오게 되었구나 하였다하여 신지강(神智江)이 임진강(臨津江)으로 개칭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선조 32년(1598) 8월 일본 풍신수길(豊臣秀吉)제독이 죽으니 일본군의 철군으로 7년만의 임진왜란이 끝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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