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re] 강마을에서 책읽기 - 모든 사물이 내는 소리- 현의 노래


글쓴이: * http://kicho.pe.kr

등록일: 2017-07-10 00:10
조회수: 369
 
선애 선생,

봄을 맞아 부시시 피어나는 그대의 마음이 부럽네. 봄이 왔다 가도, 그저 그런 내 모습이 유난히 슬퍼지는 순간일세.
김훈의 <<현의 노래>>을 읽었군. 나는 이 작품이 나오자마자 읽었는데, 그 여운은 지금껏 남아 있네. 비평가들이 꼽는 <<칼의 노래>>보다 이 작품이 일으킨 감동의 파문이 훨씬 넓고 깊었네. 여러 번 등장하는 '시즙(屍汁)'의 처절한 이미지가 삶의 고통과 고뇌를 소름 돋을 만큼 극명하게 보여주더군.
내 기억 깊은 곳에 잠겨 있던 <<현의 노래>>를 끄집어 내준 자네가 고맙네.
이 계절의 푸르른 나뭇잎들처럼 건필하게나.

백규

  

>경기도 이천 장호원 근처는 온통 분홍빛 꽃 잔치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벗들과 모임이 있었던 친지의 집에서 바라보는 복숭아 과수원은 그대로 무릉도원이었습니다. 복사꽃의 눈부신 유혹에 몸이 달아 두둥실 달이 뜬 과수원을 쏘다녔습니다. 저는 언제나 복사꽃의 눈웃음에 몸도 마음도 무장해제 당합니다. 이처럼 봄은 몸이 반응하는 계절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 봄을 맞으러 벗들과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꽃핀 과수원을 쏘다녔습니다. 그랬더니 제 몸 구석마다 봄의 숨결이 배어 교실에서 교과서를 펴는데 한 녀석이 딴 짓을 해도 너그럽게 용서가 되었습니다.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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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을 향해 한 문학상의 심사위원회는 “한국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이라고 까지 찬사를 말했다고 합니다. 이런 김훈의 글은 유려하고 깊이 있고 사물과 주체 사이의 사유를 몸의 언어로 말합니다. 『현의 노래』는 눈과 코와 살갗으로 비비며 얻는 물질적 경험의 구체성 안에서 이루어지는 지각만을 신뢰합니다. 김훈이 생로병사의 계기적 질서로 겪는 몸의 사실들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겠지요.  몸의 생리학 중에서 특히 저는 순장시녀로 내정된 가야 가실왕의 젊은 시녀 아라가 방뇨의 순간에 도망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언제나 요의를 느끼는 그녀와 모든 순간에 모든 곳에 소리를 듣는 우륵, 들숨 날숨마다 냄새가 배여 있는 아름다운 우륵의 처 비화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오늘 아침 감지 않는 머리에서 냄새가 나서 같은 차를 타고 가는 옆 사람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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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은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가을날 니문이 스승의 유품을 묻고 가야 대궐의 무덤의 능선에 오른다. 산 채로 순장당한 아라의 무덤가에서 무덤의 풀섶에서 나온 사마귀 한 마리를 들여다보며 옛 가야의 금을 뜯으면 사마귀는 니문의 소리를 흉내 내는듯한 몸짓을 해보이다가 니문 앞을 지나 봉분 뒤로 사라진다.  이 장면을 김주언은 『현의 노래』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라고 하였다. 아라의 현신인 사마귀를 바라보는 니문의 마음이 저 역시 몹시 아팠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모든 사물의 소리를 찾아내는 우륵과 그 자신이 바로 우주이며 세상의 냄새를 품은 우륵의 여인 비화, 그리고 오줌누기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젊은 순장시녀 아라가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저의 봄날은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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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복사꽃밭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벗이 있어 더 좋았고 그 먼 길을 벗을 보러 달려간 저 역시 제 마음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서일 것입니다. 강마을에 비가 내립니다. 빗소리는 운동장을 지나고 화단을 건너 수업하는 교실로 들어옵니다. 모든 사물이 내는 소리들을 마음으로 듣는 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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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들뢰즈, 카프카, 김훈/ 장석주/ 작가정신30P
>김주언 (2010). 김훈 소설의 자연주의적 맥락.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49, 231-248.
>
>『현의 노래』, 김훈, 문학동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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